60년대 은행대출 금리가 년17.5%-26% 였다. 1965년도에는 금리가 년 30% 까지 치솟았다.
이런 상황도 찬양의 대상인가? 노무현.김대중 같으면 살아 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시절의 부동산]
63년 기준으로 하여 7년 후 강남의 부동산은 학동이 20배, 압구정동이 25배, 신사동이 50배로 올랐다. 충격적이지 않는가? 같은 기간 서울의 중구 신당동은 10배, 용산구 후암동은 7.5배 상승했다. 이래도 박정희가 위대하다고 하면 도대체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김대중.노무현 같으면 몇 번이나 쫓겨났을 것이다!
박정희시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cpi)
박정희시절의 소비자 물가는 평균 년 16.5%의 상승률을 보였고 1974년 24.3%, 1975년 25.7%, 마지막해인 1979년에는 18.3%였다.살인적인 물가상승이었다. 노무현.김대중 같으면 살아 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시대의 수출현황
박정희는 날이면 날마다 수출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결과는
박정희 십팔년간 수출 638억불에, 수입 871억불, 무역적자 233억불
박정희시절; 233억불의 무역적자
전두환시절; 8억불 무역흑자 (전두환은 8억 흑자를 자랑으로 여긴다)
노태우시절; 132억불 무역적자,
김영삼시절; 366억불 무역적자,
김대중시절; 846억불 무역흑자,
노무현시절, 980억불 무역흑자,
서민들이 삶
박정희시절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 산업재해는 세계 최고였다.
피고용인 가운데 1976년 74.9%, 1978년 76.7%가 근로소득 면세점 이하였다.
(태반의 근로자가 최저생계비조차 못 버는 상황이었다)
근로자들은 노조를 결성하거나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쫒겨 나든가 빨갱이로 몰리기도 했다
이런 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남의 돈을 갈취하여 박정희보다 더 많은 돈과 빵을 던져주면나를 박정희보다 더 위대한 영웅이요, 지도자로 생각할 것인가?
박정희 추종자 들은 또 이런 말을 한다.박정희는 역사상 가장 검소하고 깨끗한 지도자 였다고...그러면 밑에 박정희 일가가 소유한 재산은 모두 박정희가 봉급을 모아서 마련한 것인가?
박정희 친인척이 재계에 얼마나 특혜를 받아서 뿌리를 박고 있는지 알면서도 박정희가 친인척 관리를 잘 했다고 OOO 떠는 것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수조억짜리 정수장학회(MBC 문화방송 100% 후에 전두환이가 30%로 결정해 줌, 부산일보100%, 영남대학교 수백만평땅, 경향신문 사옥땅, 육영재단, 어린이 대공원 ...
한국에 이런 기회주의자를 섬기는 자들이 많아서 친일 매국노 후손을 한국의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이에 적극 협조한 더러운 자들이 바로 새누리당과 조.중.동 그리고 더러운 사이비 기독교인들이다.
이글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