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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편지] 저는 누에에서 실 뽑는 여공이었습니다.

글쓴이 : 좌파의 시대 날짜 : 2012-12-13 (목) 16:38 조회 : 2497



저는 누에에서 실 뽑는 여공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기호 7번 청소노동자 김순자입니다. 매일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젊음의 거리 신촌에서 청년들을 만나니까, 마 신바람이 억수로 납니다. 연두색 옷을 입은 우리 선거운동원이 신나게 춤추는 걸 보니, 선거운동이고 뭐고 노래 한 자락 뽑고 싶었습니다.


제 어릴 적 꿈이 가수였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끼가 있었지요. 언양초등학교 1학년 시절 학예발표회 때, 운동장에서 제가 인사말도 하고 노래도 불렀습니다.


“차들은 오른쪽길 사람은 왼쪽길
길가다가 다칠까 두루두루 살피세
냉냉 뚜뚜 빵빵 다르르릉
사람조심 차조심 너도나도 길조심”


하지만 집안 형편도 어렵고, 딸들은 공부 안 해도 된다는 분위기라 중학교를 못 갔습니다. 6학년때 담임선생님께서, 제 노래 솜씨를 보시고 우리 집에 찾아오셔서 당신이 등록금을 내줄 테니 중학교에 보내자고 부모님을 설득하셨습니다. 그때 저도 옆방에서 엿듣다가 ‘옴마, 나도 중학교 가는 갑다.’ 하고 설렜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처음 한 번은 내주겠지만 계속 어떻게 도와줍니까’ 하면서 거절하시더군요.


그래서 초등학교를 끝으로 학교는 마 끝이었지요 집에서 농사일을 돕다가, 열여섯 살 땐가 언양의 견직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견직공장이 뭔고 하면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공장입니다. 거기서 월급 만 팔천 원 받고 일했습니다. 그때 제 또래 여자애들하고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여자애들은 초등학교 마치고 반은 일하러 가던 시절입니다. 저는 당시 주산을 배웠는데 주산 잘 놓는다고 회사 직원들한테서 칭찬도 받았지요.


한 2년 공장에서 일하다가 오라버니랑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혹시 ‘근대화연쇄점’이라 하면 아시나요?
슈퍼마켓이 나오기 전에 문방구도 팔고 군것질거리랑 음료수랑 술도 팔고 하는 매점을 근대화연쇄점이라 불렀습니다. 학교 앞이라 목도 좋고, 자고 나면 물가가 오를 때라 돈을 꽤 벌었지요.


제 자랑 같지만, 그때 우리 가게 별명이 ‘이쁜이 상회’였습니다^^ 근처에 아스콘(아스팔트콘크리트) 공장이 있어서 전국에서 온 트럭 기사들이 우리 가게에 들렀는데 언양의 이쁜이 상회 하면 모를 사람이 없었지요. 가게를 하다 보니 7년 동안 하루도 쉬지를 못했습니다. 처음엔 초등학교 동창들이 뭐 사러 오면 창피해서 계산대 밑에 숨고 했습니다. 나중엔 자연스러워졌지만 그때는 그렇게 창피합디다.


그러다 스물여섯에 중매가 들어왔는데, 인연이 되려고 하니까 그렇게 금방 결혼을 했습니다. 신랑은 참 성실하고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이었지요. 신랑이 빚이 있었는데, 제가 결혼할 때 가져 간 패물을 다 팔아 빚을 갚고, 5년 동안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서 1750만원짜리 집을 샀습니다. 그때까지 장롱 하나 없이 살았습니다.


생활이 좀 펴는가 했더니 신랑이 덜컥 간염에 걸리고, 간염이 또 간암이 되더니, 결혼 15년 만에 저 세상에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땐 참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딸이 있어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애 키우느라 식당도 하고 당구장도 하고, 공장에 가서 식당보조일도 하고, 그런데 나이가 더 드니까 받아주는 데가 없데요. 그래서 청소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맘대로 우리를 자르려는 게 아닙니까?


이 악물고 싸웠지요. 탈의실 문 딱 걸어 잠그고 ‘우리 쫓아낼라믄 교문 앞에 구덩이부터 파라, 우릴 구덩이에 파 묻어삐지 않으마 우린 못 나간다.’ 했습니다. 결국 이겼습니다.


참 없이 살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장사할 때도 청소할 때도, 첨엔 부끄러웠지만 ‘뭐가 부끄럽노? 남 안 괴롭히고 열심히 사는데.’ 하니 당당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어제 박근혜 후보가 TV에 나와 자기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랍디다.
그런데 ‘렌트 푸어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물으니까 한다는 말이 ‘집값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계속 전세로 도는 바람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전세 사시는 분들, 지금 아파트 값 떨어지면 사려고 기다리느라 전세에서 살고 계십니까?
집 주인이 전세금 올리면 세입자들은 은행 대출을 받으려고 발바닥이 닳도록 돌아다닙니다. 박근혜는 이 사람들 가슴에 쾅쾅 못을 치고 있습니다.


또 비정규직 문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까, ‘공시제도 같은 걸 잘 운영해서,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줄이도록 유도하겠다.’고 합니다. 지금 울산에 고압 송전탑 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올라가서 40일이 넘게 농성 중입니다. 현대자동차는 대법원 판결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불법파견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말도 안 듣는 재벌들이 공시제도를 뉘집 강아지 이름으로 여기겠습니까?


박근혜 후보, 전세 한 번 안 살아보고 자기 힘으로 월급 한 번 안 받아본 티가 팍팍 납니다. 서민의 삶을, 노동자의 삶을 하나도 모르는데 무엇이 준비된 대통령이랍니까?


저 김순자는 평생 서민으로 살았습니다. 박근혜가 준비된 대통령이라는데, 저는 준비된 서민입니다. 준비된 노동자입니다. 뭘 준비했느냐, 서민이 주인되는 세상,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준비했습니다.


여러분도 준비된 국민입니다. 서민이 주인되는 세상,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은 우리 준비된 국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누가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기호 7번 김순자가 준비된 국민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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