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와 맞물려 정부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상하이차의 기획부도를 방조해 쌍용차 부실의 첫 단추를 끼우는 데 일조했고, 정리해고 후에도 퇴직자 지원책은 실효성 없이 겉돌았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상하이차 매각과 기술유출, 기획부도에 의한 ‘먹튀 의혹’에 대해 관리·감독을 방기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4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상하이차는 당시 완성차 기술이 없던 후발업체로 누가 봐도 기술유출 우려가 제기된 상황이었다. 실제 기술유출이 시도되자 2006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상하이차를 기술유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차일피일하며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다가 2646명의 구조조정이 모두 끝난 2009년 11월에야 연구원 등 실무진만 기술유출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해 9월 쌍용자동차 청문회에서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은 외교부의 대외비 문서를 공개하며 상하이차가 ‘고분고분하지 않은 노동조합, 한국정부의 비협조, 기술유출 검찰수사’ 등을 이유로 철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상하이차가 쌍용차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유동성 위기와 자산가치를 낮게 평가해 부실 규모를 부풀렸다는 ‘회계조작’ 의혹도 제기됐지만 산업은행과 파산법원은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안진회계법인과 삼정KPMG는 쌍용차 자산평가액을 전년보다 5177억원이나 감액한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했고, 이는 2646명 정리해고 필요성의 근거가 됐다.
정부는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2009년 77일간 옥쇄파업을 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공권력을 투입해 사회적 갈등을 악화시켰다. 쌍용차 파업 기간 동안 1154명의 경찰특공대가 투입됐다. 228.8t의 물대포를 사용하고 5만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테이저건을 노동자들에게 쏘기도 했다. 심상정 의원은 “정부가 상하이차의 기획부도를 묵인하고 회계조작을 통한 정리해고를 방조하다 노동자들이 반발하자 무자비하게 탄압했다”고 말했다. 77일 옥쇄파업과 공권력 투입의 후유증으로 파업 참여 노동자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자녀까지도 심각한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 후에도 3년5개월 동안 해고자·희망퇴직자와 무급휴직자에 대한 실질적 지원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2009년 무급휴직자들을 1년 뒤 복직시키기로 했지만 정부는 회사가 이를 이행하지 않는 데도 수수방관했다. 쌍용차가 신규 채용을 진행하면서 무급휴직자를 복직시키지 않자 ‘회사가 노사합의를 불이행한다’는 지적이 커졌다. 고용노동부는 “채용 예정 업무가 무급휴직자가 종사했던 업무가 아니라면 우선 채용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므로 노사합의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고용노동부는 2009년 평택을 고용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해 1년간 1109억원으로 6328명을 지원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혜택을 받은 해고자·희망퇴직자·무급휴직자는 많지 않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사업주를 지원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직접 지원되지 않았으며 그나마도 쌍용차와 별 관계없는 지역의 중소기업이 효과를 본 측면이 있다”며 “해고 당사자들에 대한 실질적 전직 지원으로 연결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와 독일은 해고된 노동자들이 비슷한 임금 수준의 일자리로 ‘수평적 이동’이 가능하도록 기업이 조치를 하도록 제도가 설계돼 있다”고 덧붙였다.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2011년 10월부터 민간 차원에서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만들어졌다. 정부는 운영비 명목으로 1억원을 지원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관계자는 “정부에서도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실제로 이용한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와락’에 지원한 운영비도 평택시에 지원한 것으로 실질적으로 필요한 인건비와 운영비로 쓰기에는 제약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