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일하는 이모씨(48)의 3월은 현대차에서 일했던 23년의 삶과 확연히 달랐다. 밤샘근무를 없앤 주간연속 2교대제가 가져온 변화였다. 그는 1조로 일할 때는 오전 6시50분에 출근해 오후 3시30분에 퇴근한다. 처음엔 대낮에 퇴근하는 게 어색해 뭘 해야 할지 몰랐지만, 그 시간은 자연스레 가족과 함께하는 취미생활과 운동으로 채워졌다. 이씨는 “과거 밤샘근무를 하고 아침 8시에 퇴근한 날에는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출근 자체가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출근이 즐거워졌다”며 “퇴근 후 무릎이 아픈 아내와 1시간 정도 걷는데 아내가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간 주말특근까지 하느라 취미생활은 먼 얘기였던 이씨는 노동조합에서 만든 ‘기타반’에 가입했다. 이씨는 “바쁘게 살고 싶지만 일만 하는 옛날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열심히 일하되, 즐겁게 살고 싶다”며 “주간연속 2교대제가 나에게도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자동차가 밤샘노동을 없애고 노동시간을 줄인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한 지 4일로 한 달째를 맞았다. 10시간씩 주야 맞교대로 돌아가던 일터는 오전 6시50분~오후 3시30분, 오후 3시30분~오전 1시30분의 교대제로 바뀌었다. 노동자들의 삶에는 건강과 여유가 찾아오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4월부터 가족과 함께하는 ‘생태문화학교’를 열고 ‘내 손으로 황토집 짓기’ ‘도시농부학교’ 등 다양한 여가·취미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러나 주간연속 2교대제의 빛은 그늘도 만들고 있다.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전에 없던 ‘새벽노동’이 생겼다. 부품업체들은 여력과 자금력이 부족해 밤샘근무 공정을 사내하청 업체에 외주화하고 있다. 주간연속 2교대제를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의 밤샘노동이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에 실시간으로 자동차계기판을 납품하는 울산의 한 부품업체는 현대차와 함께 3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주야 맞교대로 돌아가는 일부 공정을 사내하청업체에 외주화하고 그 자리에서 일하던 정규직을 다른 공정으로 옮겼다. 정규직들은 현대차와 같이 임금을 보전받고 노동시간을 줄였지만, 밤샘 공정은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을 받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몫이 됐다.
기아차 화성공장 식당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 정모씨(49)는 오전 7시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오전 2시에 일어나야 한다. 오전 2시30분 출근버스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고 오후 10시에 잠들어도 4시간 만에 일어나야 한다”며 “식당에 도착하면 다들 비몽사몽”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원래 식당 아줌마들이 잘 웃는데 이제 웃는 얼굴이 거의 없다”며 “한 사람은 코피가 5일 동안 멈추지 않아 병원에 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재원이 부족한 중소 부품업체들은 현대차와 같이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노동강도를 높여 임금보전을 하는 방식이 어렵다보니 편법적이고 왜곡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정규직 생산직의 심야노동을 없애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심야노동을 해야 하는 이중차별이 벌어지고 있다”며 “비정규직에 대한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