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BBK사건을 맡았던 특별수사팀 검사 8명이 '짜맞추기 부실수사' 의혹을 제기한 정봉주 전 의원을 상대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패소를 확정했다.
서울중앙지검 BBK 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최재경 부장검사)은 2007년 12월 5일 당시 대선을 앞두고 BBK와 관련된 이명박 후보의 의혹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명박 후보자가 김경준과 공모해 BBK와 관련된 주가조작 및 횡령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히며 이명박 후보자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이에 당시 '이명박 주가조작 의혹사건 진실규명 대책단' 공동단장으로 활동하던 정봉주 민주당 의원은 즉각 검찰 수사결과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 의원은 "이명박의 혐의를 덮어주고 가려주기 위해 애쓴 흔적이 너무나도 역력하다"며 "검찰이 파묻어버린 BBK사건 9대 의혹에 즉각 답변하지 않는다면 검찰이 스스로 '짜맞추기 부실수사'를 인정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민주당은 김경준의 BBK 지분은 50%에 불과함을 입증하는 자필 메모를 확보해 두고 있다"면서 "검찰이 갖고 있다는 김경준의 자필 메모를 공개하라, 검찰이 이번 수사에서 여러 가지 증거를 누락시켰다, 2002년 부실수사에 이어 또다시 검찰이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정 의원은 12월 7일 현안브리핑을 통해서도 "이명박이 BBK를 100% 소유하고 있다,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하면서 이명박이나 검찰에게 유리한 자료만 공개했다"면서 "대선이 끝난 다음에 짜맞추기 수사로 검찰 몇 명이 옷 벗어도 자기들은 대통령되고 난 다음이니까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진실은 결국 밝혀질 것이다, 검찰은 조작수사, 왜곡수사, 부실수사에 대해 책임져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에도 국민의 상당수가 수사결과를 믿지 않는 가운데, 2007년 12월 16일, 이명박 후보가 2000년 10월 17일 광운대에서 강연을 하면서 자신이 직접 BBK를 설립했다는 취지로 발언하는 내용의 동영상이 공개돼 의혹은 더욱 커졌다.
결국 특별검사가 임명돼 수사가 진행됐다. 특별검사는 2008년 2월 "이명박 후보가 김경준과 BBK 등을 동업으로 운영하면서 김경준의 옵셔널벤처스의 주가조작과 회사자금 횡령 범행에 가담하거나 공모한 사실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특별수사팀 검사 8명들은 "김경준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의 혐의를 덮어주기 위해 불리한 증거자료를 숨기거나 은폐하는 방법으로 짜맞추기식 수사를 한 사실이 없고, 이 후보에게 불리한 김경준의 자필 메모를 고의로 숨기지도 않았음에도, 정봉주 의원이 허위사실을 유포해 검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심은 "검사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저하돼 명예가 훼손됐다"며 "정봉주 전 의원은 특별수사팀 검사 8명에게 합계 16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인 서울고법 제19민사부(재판장 고의영 부장판사)는 2011년 4월 정봉주 전 의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은 1심 판결을 뒤집고, 검사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짜맞추기 수사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건의 수사에서 검찰의 사건처리가 불공정하다는 의혹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수사적으로 과장 표현한 것으로서 정당 활동의 보장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의 발언으로 검사들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수 있다고 해 바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건은 검사들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28일 BBK 특별수사팀 검사 8명이 "이명박을 덮어주려 짜맞추기 수사를 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정봉주 전 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김경준에 대한 수사는 대통령선거 후보자의 공직담당적격을 검증하는 의미가 있어 국민적 관심 대상이고, 피고의 발언은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BBK 사건과 관련한 검사의 직무집행의 공정성에 관한 것으로서 공적 관심 사안인 한편, 검찰은 김경준의 자필 메모를 하나의 근거로 삼아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인데, 피고가 갖고 있던 김경준의 자필 메모는 검찰의 것과 다른 내용이 기재돼 있어 피고로서는 검찰의 수사절차에 의문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비록 피고가 '짜맞추기 수사, 조작수사, 왜곡수사, 부실수사' 등의 단정적 표현을 사용했더라도 이는 당이 구성한 대책단의 공동단장 지위에서 검찰의 사건처리가 불공정하다는 의혹에 관한 정치적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 수사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한 것으로서, 정당 간부 등의 정치적 주장이나 논평이 갖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피고의 발언이 구체적 정황의 뒷받침 없이 정당 활동의 보장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나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없어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재화 변호사 "수사 비판해선 안 된다는 검사의 오만에 경종"
한편, 정봉주 전 의원의 법률대리인인 이재화 변호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BBK 검사들이 정봉주 전 의원을 상대로 한 손배소송은 5년 만에 종결됐다"며 "검사들은 정봉주를 기소하는 것만으로 부족해서 보복적 차원에서 경제적 부담까지 주겠다는 의도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법원이 보기 좋게 검사들의 무리한 청구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또 "국회의원이 공적관심사인 검찰의 BBK사건 수사에 대해 비판적인 논평을 한 것에 대해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고, 국민의 대표기관을 무시한 오만한 자세"라며 "BBK 검사들은 이제라도 제 정신 차려라"라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은 자신들의 수사에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검사의 오만함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