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달이 동그래지기 전엔 끝나야 되는데…”
무언가 철학적인 의미라도 담겨 있을 것 같았던 영화 제목 ‘저 달이 차기 전에’(따미픽쳐스 제작)는 공장 옥상에서 쌍용차 조합원이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읊은 혼잣말에서 따온 것이었다. 당시 쌍용차 문제가 한시라도 빨리 해결되길 바라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었겠냐마는, 공권력과 용역으로부터 밤낮없이 포위 공격당했던 쌍용차 조합원들만큼 간절하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이 혼잣말이 두려움과 초조함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조바심의 표현이라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이 말을 한 조합원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처절하고 참담한 현실에 쓴 웃음을 지으면서도 마음을 다잡는 그의 표정을.
내가 마치 전쟁터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전쟁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이 영화의 시작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두두두두 헬기소리가 진동을 한다. 한 조합원이 “전쟁터야. 완전히 전쟁터!”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영화의 배경은 실제 전쟁터였다. 아무리 잘 만든 전쟁영화도 세트장에서 배우들이 장난감 무기를 들고 연기하는 모습을 찍은 것에 불과하다. 반면 ‘저 달이 차기 전에’에 나오는 현장은 실제 전장이며, 사용된 무기들은 장난감이 아니다. 물론 부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표정 또한 연기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을 담았다고 무조건 실감이 난다는 법은 없다. 이 영화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오히려 영화가 담은 현실이 도무지 현실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정리해고를 막아내고 함께 살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하는 현실 같지 않은 현실. 이 영화를 제작한 서세진 감독은 “이 영화에 담은 불편한 진실은 우리사회의 ‘매트릭스’와 같다”고도 말했다.
영화는 극한의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보여준 숭고한 동지애도 담아냈다. 팔이 부러져 병원에 가야하는 상황임에도 부상보다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괴로워 눈물 흘리는 조합원. 발이 썩어가는 와중에도 농성장을 지키려는 조합원과, 그를 내보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모진 말을 하는 그의 동료. 나만 살기 위해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 나선 그들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노동자다운 모습이 아닐까.
물론 양보 없는 사측의 태도로 협상이 결렬되고 희망이 사라져가는 와중에 많은 조합원들이 이탈하기도 했다. “이 놈의 회사, 정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원망한 것은 ‘사측’이었지 ‘일터’가 아니었다. 사측이 전기를 끊었을 때 노동자들은 비상전력을 자신들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도료가 굳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데 썼다. 도장공장에 불이 붙었을 때도 불을 끈 것은 경찰이나 사측이 아니라 농성중인 노동자들이었다. 언젠간 다시 돌아갈 소중한 일터였기 때문이다.
나보다 동료, 현재보다 미래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노동자들의 모습에 시사회는 눈물바다가 됐다.
77일 간의 투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영화에서 한 조합원이 말했다. “정리해고는 값싼 구조조정방안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보여준 것 아니겠냐”고. 맞는 얘기다. 쌍용차 조합원들의 영웅적인 투쟁은 자본과 정권에게 노동자들이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2천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해고되고 수많은 가정이 파탄에 이르렀다. 일부 동료들과 가족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너무도 큰 희생이다. 게다가 저들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타협 정신을 무시한 강압 수사로 수십 명의 구속자가 생겼으며, 농성에 참가한 사람들은 해고자, 무급자, 징계대상자 등으로 나뉘어 고통 받고 있다. 한상균 지부장은 16일 법정에서 “죽은자를 무덤에서 다시 꺼내 참수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렇다. 쌍용차 투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쌍용차 동지들이 현장으로 돌아가지 전까지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 영화에 한 조합원이 동료들에게 “이 자리에 모여 막걸리 먹을 날을 기다리겠다”고 힘주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바람이 현실이 되려면 어쩌면 77일보다 더 길고 힘겨운 싸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77일 간 쌍용차 동지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연대가 여전히 그리고 더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영화 <저 달이 차기 전에>는 지난 여름 경찰이 쌍용차 평택공장을 완전히 봉쇄한 상태에서, 취재를 위해 공장안으로 잠입한 <민중의소리> 기자가 촬영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서세진 감독은 “함께 살자는 쌍용차 조합원들의 외침이 우리 모두의 외침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17일에는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 첫 시사회가 열렸다. 이날 시사회에는 쌍용차 투쟁 당사자들뿐 아니라 투쟁에 함께했던 수많은 동지들이 참석해 의원회관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저 달이 차기 전에>는 24일 인디스페이스(중앙시네마 3관)에서 후원시사회를 통해 다시 상영될 예정이며, 현재 지역 상영회와 공동체 상영을 신청받는 중이다.(문의 press@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