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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정치신문 100호발간!] 강신준 교수의 자본 해설을 둘러싼 논쟁 비평(2) - 임금에 대한 반맑스주의적 해석

글쓴이 : 전국노동자정치… 날짜 : 2013-12-04 (수) 00:50 조회 : 4251
http://lmagit.jinbo.net/v2.1/main.php (다른 기사도 많이 있습니다)
강신준 교수의 자본 해설을 둘러싼 논쟁 비평(2)
- 임금에 대한 반맑스주의적 해석



“사상이 없는 곳에는 사상을 대신해 말이 판을 친다”


1.


장시간 노동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감으로써 자본가가 무상으로 가져가는 잉여노동을 줄이고 자본주의를 성숙시키는 것이 변혁의 성공 방향이라고 하는 강신준 교수의 태도는 임금 문제를 다루는 데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실 임금은 투하되는 자본의 일부분이며 가치의 분배와는 무관합니다. 임금이 생산영역인 제1권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고 나면 최근 대선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양극화의 모순은 사전에 결정된 임금과 사후에 만들어지는 잉여가치의 격차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이것은 분배영역이 아니라 생산영역에서 그 처방을 찾아야 합니다. 정해진 임금 이상으로 과도하게 잉여가치가 ‘생산’된 것이 바로 격차의 주범이니까요.(강신준 | 동아대 교수·경제학, 오늘 ‘자본’을 읽다]II. 제1권 : (12) 임금, 경향신문, 2012-11-30)

강신준 교수는 역시 단지 애초에 정해진 노동력의 재생산비 즉 임금에 비해 자본가들이 차지하는 잉여가치가 ‘과도하게’ ‘생산’되어 격차 즉 양극화를 낳은 것이 문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도하게 벌어진 잉여가치와 임금의 차이를 좁히는 것, 즉 점진적으로 임금인상을 추구하여 양극화를 좁히는 것이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변혁의 방향이 되는 것이다. 강신준 교수는 이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맑스의 관점이라고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다.

오늘날 경제민주화는 독점자본(재벌)의 생산과 사회 전체에 대한 지배(이것을 횡포라고들 한다.)로 인해 발생하는 대중적인 불만을 억누르고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부르주아 정치권과 소부르주아들이 내걸고 있는 구호다. 이 구호는 독점자본의 사회 지배를 은폐하는 수단에 불과하며 독점자본의 독점을 전혀 약화시키지 못한다. 실제 박근혜 정권 역시 경제민주화 구호를 내걸었으나 집권 이후 재벌의 요구에 맞춰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 행보를 함으로써 경제민주화 요구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강신준 교수의 주장과 달리 맑스는 양극화에 대해 뭐라고 했는가? 맑스는 양극화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자본론에서 이와 관련한 유명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모든 방법은 동시에 축적(蓄積)의 방법이며, 그리고 축적의 모든 확대는 다시 이 방법을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된다. 이로부터 자본이 축적됨에 따라 노동자의 상태는 [그가 받는 임금이 많든 적든] 악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끝으로 상대적 과잉인구(相對的 過剩人口) 또는 산업예비군을 언제나 축적(蓄積)의 규모 및 활력에 알맞도록 유지한다는 법칙은 헤파이스토스〚Hephaestos: 불과 대장일의 신〛의 쐐기가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에 결박시킨 것보다도 더 단단하게 노동자를 자본에 결박시킨다. 이 법칙은 자본의 축적에 대응한 빈곤(貧困)의 축적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한 쪽 끝의 부(富)의 축적은 동시에 반대 편 끝[즉 자기 자신의 생산물을 자본으로 생산하는 노동자계급의 측]의 빈궁 · 노동의 고통 · 노예상태 · 무지 · 야만화 · 도덕적 타락의 축적이다.(맑스, 자본론 Ⅰ[하], 제7편 자본의 축적과정 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08년 2월 25일, 881쪽)

이것이 이른바 맑스주의와 맑스주의의 적대자들이 논쟁을 하며 ‘궁핍화 테제’라고 이름을 붙인 것으로 여기에는 맑스의 과학적, 변혁적 사상의 정수가 담겨 있다. 맑스는 자본이 잉여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동시간 증대, 노동강도 강화, 생산성 향상 등 모든 방법이 자본축적 방법이며, 역으로 자본축적 확대를 통해 이러한 방법들을 더욱 더 발전시켜나간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축적은 노동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주기적인 과잉생산 공황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축적 과정은 자본주의 모순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노동자들을 실업상태로 내몰며 상대적, 절대적으로 점점 더 빈궁으로 몰아넣고, 노동의 고통에 시달리고 노예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한다. 자본 축적이 진전되면서 자본의 부와 권력이 강화되면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억압과 지배력도 강화되고 노동자들은 점점 더 자본에 종속되어 독자성과 자주성을 상실하게 되기도 한다.

자본이 자본으로서의 지배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 강화하도록 하고, 반면에 노동자는 임금 노예로서의 종속적 관계로 살아가도록 하는, 지배와 예속관계의 원천은 자본의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권이다. 자본주의 국가권력은 물리적 폭력을 중심으로 해서 자본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와 지배관계를 유지, 강화하도록 한다.

맑스는 이러한 자본축적은 노동자들을 노예상태와 무지, 심지어 도덕적 타락으로 몰아넣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을 분노, 각성하게 하고 투쟁으로 떨쳐 일어나도록 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자본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착취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폭력적 물리력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과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비호하고 있는 국가권력과의 대결이 없다면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투쟁은 불가능하게 된다.

강신준 교수 주장과 전혀 다르게 맑스는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많든 적든 노동자의 상태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말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아져서 설혹 ‘정해진 임금’ 이하로 과소하게 잉여가치가 생산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노동자의 상태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맑스는 이처럼 단순하게 임금과 잉여가치의 격차를 좁히는 것을 넘어서 자본주의 생산관계 자체가 노동자를 노예로 만들고 고통과 가난, 억압과 착취를 강화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강신준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으로 착취의 제한과 규제를 말하면서 맑스주의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착취제도 자체의 철폐가 자본론을 통해서, 더 나아가 맑스의 저작 전반에 걸쳐서 맑스 사상의 핵심 원칙인 것이다. 이것은 또한 현대자본주의에서 자본 독점을 은폐하고 기만하고 있는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독점자본주의의 사회 지배 자체의 철폐가 맑스주의의 변혁적 사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강신준은 생산영역에서 경제양극화의 모순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뒤에서 더 살펴보겠지만, 실은 교환영역, 분배영역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그 해결 방안을 그 틀 내로 한정함으로써 맑스주의를 왜곡날조하고 변혁성을 거세하려고 시도한다.


2.


강신준 교수는 이제 또 다시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는 임금 이상으로 지출되는 노동, 즉 잉여가치의 존재와 크기에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임금과 잉여가치로 분할되는 비율 즉 노동소득분배율을 개선하면 잉여가치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해방의 지렛대가 확보된다고 하고 있다.

사실 앞서 노동시간의 분할에서 얘기했듯이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는 생계비인 임금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임금 이상으로 지출되는 노동, 즉 잉여가치의 존재와 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임금은 총노동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총노동이 임금과 잉여가치로 분할되는 비율(노동소득분배율이라고 합니다)을 임금을 통해 알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 잉여가치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지렛대가 확보되는 것입니다.(강신준, 같은 기사)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가 잉여가치의 ‘존재’에 있다는 것과 잉여가치의 ‘크기’에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잉여가치의 ‘존재’가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라면 잉여가치의 ‘존재’ 자체를 없애는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잉여가치의 ‘크기’가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라고 본다면 잉여가치의 ‘크기’를 줄이는 투쟁을 전개하면 된다. 전자의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를 철폐하는 투쟁이고, 후자의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임금인상 투쟁’이다. 강신준은 이렇게 성질이 다른 두 문제를 동급으로 취급하면서 스스로는 후자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다. 그것도 성과급제라는 굉장히 왜곡된 방식으로. 이 문제는 뒤에 좀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자본주의의 대변자들은 이윤을 침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임금과 관련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해 왔다. 그 핵심은 임금이 노동의 대가라고 함으로써 마치 노동자가 일한 결과를 다 받는 것으로 왜곡하여 자본의 착취를 은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맑스는 사실은 임금이 노동자와 그 가족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생활수단의 가치로 구성되는 노동력의 대가로 결정된다는 것을 밝혔다. 이를 통해 맑스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 중 일부만을 받고 나머지는 자본가가 잉여가치로 가져간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자본주의 대변자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필연적으로 생산품들의 가격인상을 낳기 때문에 임금인상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서도 맑스는 노동자의 임금인상이 노동자들이 주로 소비하는 생활필수품에 대한 소비 증가로 이어지면서 가격을 일시적으로 높인다면, 마찬가지로 가격상승에 따르는 상품 생산의 증대를 가져오면서 물가를 종전대로 되돌리거나 낮추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맑스는 노동력의 재생산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사회, 역사, 문화적 발전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고 있다. 자본은 이윤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에게 최대한 많이 일을 시키고 최소한의 임금을 주려하기 때문에 결국 임금수준은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단결하여 어떻게 자본가에게 맞서 싸우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와의 치열한 계급투쟁을 통해서 임금을 높여나가서 노동자의 삶의 수준을 높여나가야 한다. 또한 이러한 투쟁의 과정 속에서 단결력과 계급의식, 계급적 자신감을 높여나가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임금인상 투쟁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임금인상 투쟁 그 자체에 대한 과도한 환상과 기대는 노동자에게 대단히 해로운 것이다. 가장 먼저 자본주의 내에서 임금인상만으로 자본주의 모순을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말살시킨다. 그리고 실제로 임금인상 투쟁은 자본의 착취증대를 통한 이윤추구를 일시적으로 막거나, 제어할 수는 있어도 이윤증대 경향을 완전히 멈추게 할 수는 없고, 자본주의 착취 체제 자체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의 착취를 강화하여 임금을 삭감시키고 노동자의 상태를 악화시켜 자본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맑스는 여러 차례 그것을 강조한다.

노동자들이 노동일을 이전의 합리적인 크기로 되돌리기 위하여 투쟁하거나, 또는 -표준 노동일 법을 제정케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임금을 비단 그들에게서 짜내는 추가적 시간에 비례하는 정도로 올리고 또 그 이상으로 올리게 함으로써 과도의 노동을 방지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들은 자기의 의무를 수행할 따름이다. 그들은 오직 자본의 포악한 약탈을 제한할 따름이다. … 그런데 현대 산업의 전 역사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자본은 만일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맹혹하고도 무자비하게 전체 노동계급을 이러한 극도의 악화상태에 떨어뜨리려고 애쓸 것이다.(맑스, 임금, 가격 및 이윤, 경제학 노트, 김호균 옮김, 이론과실천, 1988, 249쪽)

임금을 노동 강도의 증대에 상응하여 올리기 위해 투쟁함으로써 자본의 이 경향을 억제하는 노동자는 오직 자신의 노동의 가치 감소와 자기 후세들의 악화상태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것일 따름이다.(같은 책, 250쪽)

이상 몇 개의 지적으로써도 근대산업의 발전은 더욱 더 자본가에게 유리하게 되고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일반적 경향은 임금의 평균 수준의 제고가 아니라 그 저하를 가져온다는 것, 즉 노동의 가치(노동력의 가치)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최저한계까지 인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현 제도 하에서 사태가 이러한 경향성을 지닌다고 하여 노동계급이 자본의 약탈적 침해와의 투쟁을 포기해야 하며 자기처지의 일시적 개선을 위하여 그때 기회를 이용하려는 그들의 시도를 중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만일 노동자들이 이렇게 행동한다면 이미 구제할 도리 없는 윤락자(淪落者)의 무리로 타락하고 말 것이다.(같은 책, 257쪽)

잉여가치의 생산 또는 이윤의 획득이 이 생산양식의 절대적(絶對的) 법칙(法則)이다. 노동력은 생산수단을 자본으로 유지하며,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자본으로 재생산하고, 불불노동(unpaid labour)으로 추가자본의 원천을 제공하는 한에서만 판매될 수 있다. 만약 [노동자계급이 제공하고 자본가계급이 축적하는] 불불노동의 양이 급속히 증가해 그것이 자본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지불노동의 비상한 추가가 필요한 경우, 임금은 등귀하고, 그리고 기타 조건이 같다면, 불불노동은 그에 비례해 감소한다. 그러나 이 감소는 자본을 길러내는 잉여노동이 더 이상 정상적인 양으로 제공되지 않는 점에 도달하자마자, 반작용이 시작된다. 즉 수입(收入) 〚자본가가 상품의 판매에 의해 거두어들이는 자본가치와 잉여가치의 합계를 가리킨다〛 중 더 많은 부분이 자본화되고, 축적은 쇠퇴하고, 임금의 등귀운동은 장애에 부닥친다. 그리하여 임금의 등귀는 자본주의 체제의 토대를 침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점점 더 확대되는 규모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한계 안에 머문다.(자본론 Ⅰ[하] 제7편 자본의 축적과정 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848쪽)


자본축적의 법칙에 임금인상은 종속되어 있다. 자본주의에서 임금인상을 점진적으로 해나가면서 이윤을 점차적으로 축소해나가면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 자본은 임금인상이 이윤을 축소시켜 축적을 방해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간다면 자본 축적 규모를 축소시킴으로써 그에 따라 고용된 노동자 수가 줄어들거나 임금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면 자본 축적 자체를 중단함으로써 이 자본에 고용된 노동자들 전체가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심지어 현대자본주의에서 자본은 위에서 든 예 말고도 인플레이션을 통해, 또는 그것을 기회로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대폭 인하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냉정한 현실은 노동자의 빈곤과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성 향상은 고용 없는 성장을 낳아 노동자들 상당수를 실업 상태로 몰아넣고 있으며, 용케 취업을 하더라도 반실업 상태와 다를 바 없는 비정규직으로 되게 함으로써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을 감수하도록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노동소득분배율은 지속적으로 자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자본은 점점 더 소수한테 집중되고 이들이 사회 대다수 부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에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 민중들의 삶은 점점 더 상대적 또는 절대적으로 악화돼 가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재생산비를 높이려는 투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 착취와 피착취 관계를 파탄내고 임금노예의 현실을 깨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노동자들이 이러한 투쟁에 갇히는 순간 노동자들은 점점 더 임금 노예의 굴레에 깊숙하게 빠져들게 된다.

사회가 대립하는 두 계급들로 분할되어 있는 한 : 한편으로는 자본가들, 즉 생산 수단 전체 — 토지, 원료, 기계 —의 독점자들로;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 수단에서의 모든 소유를 빼앗긴 근로 인민들이며 자신의 노동력말고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인 노동자들로 — 이러한 사회 조직이 존재하는 한, 임금 법칙은 전능한 채로 남을 것이며, 날마다 새롭게 노동자를 자본가에게 독점되어 있는 그 자신의 노예로 만드는 사슬에 튼튼하게 매달 것이다.(프리드리히 엥겔스, 임금제도, 박종철출판사 5권, 김세균 감수, 480쪽)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타파한다는 목표가 없이 노동소득분배율을 점진적으로 높임으로써 자본주의를 성숙시키고 이를 통해 잉여가치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한다는 강신준의 주장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필연적 법칙을 외면한 공상적이고 몰계급적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결국 “임금제도의 기초 위에서 균등한 보상, 또는 적어도 공정한 보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노예제도의 기초 위에서 자유를 요구하는 것과 똑같다.”(맑스, 임금, 가격 및 이윤, 232쪽) 그렇다면 노동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근로 인민들 자신에 의한 노동 수단들 —원료, 공장들, 기계—의 보유.(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정한 하루 작업에 대한 공정한 하루 임금, 같은 책, 479쪽)

노동자들은 강신준 식 개량주의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를 평생 노예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자본주의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생산수단을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소유하는 투쟁의 궁극적 목표를 가져야 한다.


3.


강신준은 자본론에서 맑스가 임금문제를 다룬 부분도 심각하게 왜곡 날조하고 있다. 여기서는 강신준이 맑스의 임금에 대한 원칙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 기인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조합들에서는 임금인상 요구의 근거로 생계비를 해마다 조사해서 발표하고 있습니다. 생계비가 얼마 올랐으니 임금을 그만큼 올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얼핏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임금=생계비’라는 개념에 기초한 것인데 실제로는 생계비가 아니라 기업의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연공급)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업별로 분할된 노조는 물론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분할도 정당화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 임금개념은 원래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고전경제학의 임금이론이었으며 그나마 고전경제학 스스로도 틀린 것으로 판단하여 이미 폐기한 임금이론입니다. 게다가 여기에서 마르크스가 얘기하고 있듯이 그것은 자본가의 임금관리 개념에 입각해 있습니다. ‘임금=생계비’라면 그 이상의 잉여가치는 얼마가 되든 상관할 필요가 없는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 마르크스는 이런 임금개념이 곧 자본주의를 극복한 사회의 임금이 될 것임을 언급해 두고 있습니다.

▲ “각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생활수단의 몫이 각자의 노동시간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노동시간은 공공노동에 대한 개별적 참여도를 재는 척도로 이용되고, 그리하여 공동생산물 중 개별적으로 소비되는 부분 가운데 각 생산자들의 몫을 재는 척도로도 이용된다.”(1권, 142쪽) (강신준 번역본 자본론 출처)

총노동에 대한 임금은 연공급과 구분하여 직무급, 능률급이라고 불립니다. <자본>의 유산을 물려 받아 초기업 노동조합과 강력한 노동자 정당, 그리고 두터운 사회안전망을 구축한 북유럽 국가들에서 연공급이 아니라 직무급과 능률급의 임금을 채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입니다.(강신준, 같은 글)


임금은 노동자와 가족의 생계비의 가치로 구성된다는 임금 원칙은 맑스주의 임금 원칙에 철저하게 부합하는 것이다. 이것을 생활임금, 생계비 중심의 임금 원칙이라고 한다. 그런데 강신준은 이러한 임금원칙이 맑스의 입장과 다르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강신준의 주장대로 임금=생계비라는 개념은 그 이상의 잉여가치는 상관이 없다는 태도인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노동력 재생산비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발전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이 발전 수준은 주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으로 결정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이 생활임금, 생계비라는 원칙을 가지고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임금과 삶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투쟁을 전개한다.

연공급은 애초에 근속년수가 상대적으로 짧은 노동자들 비중이 높기 때문에 자본이 임금을 줄이고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충성도를 높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하였다. 그러나 경총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가 단체는 최근에 와서는 정기승급을 폐지하여 연공급 비중을 줄이고 직무급 능률급 형태로 임금 형태를 바꾸려고 부단하게 시도하고 있다. 자본의 이러한 임금 체계 개편은 노동자 간 경쟁을 부추겨서 분열을 유도하고, 노동자 통제와 포섭을 강화하고 자본의 권력을 증대시키고 임금 지급 총액을 줄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추진되고 있다. 또한 직무급과 능률급은 둘 다 성과주의 임금의 형태로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생산성 향상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시간임금과 개수임금의 두 가지 기본적 임금 형태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시간임금의 변형된 형태가 개수임금이고 개수임금이 바로 성과급제 임금형태라고 하고 있다. 맑스는 시간임금이나 개수임금이나 노동자가 마치 일한 시간만큼 노동의 대가를 다 받고, 일한 양만큼 분배받는 것으로 보이도록 하여 착취를 은폐하고 자본의 착취를 높여서 이윤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공급제는 근속년수가 늘어나면 임금을 더 지급하는 생활임금의 형태로 위장하고 있으나 사실 이는 “시간임금의 대표적인 변형태”(채만수, 노동자교양경제학, 제6강 임금, 2011년 제5판, 273쪽)로 역으로 근속년수가 짧으면 저임금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연공급제 형태에서도 자본은 기본급 비중은 줄이는 저임금 체제를 유지하면서 각종 수당 신설을 통해 장시간 노동을 유도해 왔다.

강신준 교수는 임금=생계비 원칙을 교묘하게 현재의 연공급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연결을 시키면서 직무급과 능률급 형태가 노동자의 임금 원칙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또한 숙련에 기초한 임금 체계라고도 하고 있다. 강신준 교수는 이러한 임금 체계 개편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산별노조 시대에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처럼 이러한 임금 체계 개편은 경총을 비롯한 자본가 계급과 정권의 임금 체계 개편에 부합하는 것에 불과하다.

강신준 교수를 비롯한 개량주의자들이 생활임금 원칙을 약화시키면서 스웨덴 모델을 따라 연대임금제 운운하는데, 이는 정규직 임금양보를 통해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것으로 된다. 이 또한 자본과 정권의 임금 개편 방향과 일치하는 반노동자적 임금 체계에 불과하다. 이들 개량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숙련에 기초한 임금체계는 자본이 끊임없이 신기술과 자동화 체제를 도입하면서 대다수 노동력이 점점 더 단순하고 비숙련 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저임금을 합리화하는 계기로 이용될 수 있다.

물론 강신준 교수는 산별노조가 직무평가에 참여하면 임금삭감과 구조조정, 노동 유연화를 교섭 대상으로 해서 노조가 자본의 일방적 횡포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경영참가와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이 계급타협주의에 빠지면 자발적으로 기업 경영 상태나 지불능력 상태를 고려하면서 생산성 향상에 나서고 임금양보와 단협양보에 나서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강신준 교수가 찬사를 보내는 독일 산별노조의 계급타협주의가 그렇다. 한국에서도 과거 강신준, 임영일 교수 등의 ‘산별만능론’적 입장은 노자 타협주의에 바탕을 둔 주장으로 이것이 과거 금속연맹과 현재 금속노조의 산별교섭 방침에 막대한 해악을 끼쳤다.

맑스는 <고타강령 초안 비판>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분배 원칙을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만큼 분배 받는다”는 압축적 구호로 설명했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강신준 교수가 위에서 인용한 부분을 서술하면서 분명하게 “상품생산과 대비하여”, “공동소유의 생산수단으로 일하며 또 각종의 개인적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지출하는 자유인들의 연합체”를 전제했다. 그런데 강신준 교수는 맑스가 사회주의 사회에서 각 생산자가 사전에 책정된 공공노동에 대한 개별적 기여도인 노동시간에 따라 생활수단의 몫을 분배받는다는 설명을 한 부분을 가지고 이를 직무급, 능률급 임금 체계를 합리화 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물론 자본주의의 분배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 “내용과 형식은 변화한다.” 그것은 사회주의에서는 전체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합리적으로 사전에 계획을 세우는 공공노동의 일부로 개인들의 노동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개별 자본의 이윤추구가 생산의 원동력이 되는 자본주의와 달리 착취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일하지 않는 자본가와 금리 생활자, 투기업자들처럼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기생분자들이 거대한 부를 소유하지만, 사회주의에서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받고 투명하게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만큼 분배받는 합리적이고 실질적으로 평등한 분배방식이 자리를 잡는다. 물론 사회주의에서 자본가들의 착취는 없지만 노동의 결과물을 다 받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새롭게 생산을 확대하는데 필요한 비용,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구제비용 등을 공제하고 나서 노동의 결과물을 다 받기 때문이다.

강신준 교수는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면 그것이 새로운 사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사고하기 때문에 이행전략이 전혀 없고 또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에서의 분배 원칙을 가지고 자본주의 생산관계 내에서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의 직무급, 능률급은 사회주의 사회처럼 노동에 기여한 몫만큼의 분배가 아니라 단지 착취를 은폐하고 강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노동조합이 직무 평가, 능률 평가에 참여한다는 것은 최선의 경우는 단지 노동소득 분배율을 상대적으로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적용하고, 최악의 경우는 자발적인 임금삭감과 구조조정 동조 등 자본의 착취강화에 동조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 최선의 경우조차도 마치 노동자가 착취가 없이 노동 결과물을 다 분배받는다는 환상을 조장하여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노자 타협주의 체제를 강화하여 착취체제의 안정성에 복무한다.

그렇다면 맑스주의의 생활임금, 생계비 임금원칙은 현실에서 어떠한 목표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투쟁을 철저하게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해방이라는 목표 하에 계급투쟁의 수단으로써 사용한다. 법적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하는 투쟁을 전개한다.

직무급, 성과급 임금체계 개악을 저지하고 잔업과 특근 없이 기본급 중심으로 생활임금을 쟁취하는 투쟁을 전개한다.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강도 강화 없는, 임금삭감 없는 실질적인 야간노동 철폐투쟁을 전개한다.

자본의 지불능력과 생산성 논리에 갇히지 않고 공세적으로 노동자 생활임금 쟁취투쟁을 전개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노사정 타협 논리에 갇히지 않고 최저임금 수준을 표준 생활임금에 가깝게 제출하고 전 계급적 투쟁으로 생활임금을 쟁취한다.

정규직의 양보가 아니라 정규직, 비정규직, 이주노동자가 단결하여 임금을 상향적으로 대폭 인상하고 임금 차별과 차이를 좁혀 나간다. 이럴 때는 정률제 보다는 정액제로 임금 격차를 더 줄이도록 한다.

시간제 근로 계약제 시도에서 보듯, 남성 노동자의 보조적 존재로 차별적으로 취급하여 여성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시키려는 시도를 분쇄한다. 자본의 무노동 무임금 이데올로기를 격파하고 파업 기간 동안의 임금을 받아낼 수 있도록 투쟁한다.

이처럼 노동자의 임금투쟁 원칙은 자본에게 놀아나면서 다양한 임금 체계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맑스주의의 변혁적, 과학적 사상에 충실하게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다.


4.


강신준 교수는 (잉여)가치는 구매된 노동력이 자신의 가치 이상으로 생산과정에서 소비됨으로써 만들어진다고 자본을 해설하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 자본은 생산수단의 소유자이고 노동자는 노동력 밖에 없기 때문에 우월한 힘으로 노동력 가치를 끝없이 낮추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맑스는 자본주의 법칙을 연구하는데서 개별적, 우연적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서로 교환되는 상품들은 같은 가치대로 교환된다는 등가교환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자본의 노동력 착취는 교환과정이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노동력의 가치 이상으로 노동력을 소비함으로써 만들어진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힌 것으로 맑스주의 노동가치설의 핵심적인 이론이다. 그런데 강신준 교수는 다음에 보는 것처럼 실제로는 교환관계의 문제, 부등가 교환의 문제로 맑스주의의 과학성을 끊임없이 탈선시킨다.

강신준 교수는 봉건제에서의 착취에 대해서도 봉건제는 처음에 착취체제가 아니었는데 나중에 교환이 발전하고 생산과 소비가 불일치하면서 불평등이 심화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내가 이 책에서 연구해야 하는 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그 양식에 상응하는 생산관계 그리고 교환관계이다.”라는 맑스 자본론 1권에서의 문장을 인용하면서도 “위의 구절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교환관계’라는 단어입니다. 자본주의가 이전의 경제구조와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바로 이 교환이기 때문입니다.”([오늘 ‘자본’을 읽다]I. 프롤로그 (2) 혁명에 사로잡힌 물음 - ‘자본’의 출생과 변증법 강신준 | 동아대 교수·경제학 ㆍ‘변증법’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 발전시키는 게 혁명)라고 맑스주의를 왜곡시킨다.

맑스는 자본주의를 생산과 교환의 통일체로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의 중심성을 강조한다. 변증법적으로 그것이 내적 모순의 원천이다. 레닌 역시 힐퍼딩의 <금융자본>에 대해 그 저작의 의의에도 불구하고 화폐와 신용, 유통자본과 은행자본을 중심으로 유통주의적 편향에 빠졌다고 주장하면서 독점자본은 생산의 집적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신준 교수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는 김성구, 박찬식, 박승호 교수가 다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강신준 교수는 불평등한 교환에 의해 개미(노동자)와 베짱이(자본가)의 운명이 역전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개미와 베짱이의 운명이 역전되는 비밀은 판매되는 상품의 가치가 구매된 상품의 원래 가치보다 크다는 점에 있습니다. 판매자에게 이 교환은 손해입니다. 그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많으니까요.(강신준, 같은 글)

강신준은 노동자가 판매하는 상품(노동력)의 가치가 자본에 의해 구매된 상품의 가치 보다 더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교환의 불평등 때문이 아니다. 교환과정에서는 노동력의 가치대로 평등한 형식으로 구매하면서도 생산과정에서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을 그 가치이상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강신준은 노동력 매매 과정에서의 등가교환과 생산과정에서 노동력 가치 이상으로 소비되는 생산과정에서의 착취의 문제를 교환과정의 문제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교양경제학>(채만수, 같은 책, 264쪽) 주6)에서도 강신준의 부등가 교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 책에서 부분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부분을 신문에서 그대로 인용해보자!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자가 왜 가난한가? 그것은 노동력 상품의 부등가교환 때문이며, 노동운동의 실천적 과제는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다. 교환이 사회적 합의과정이라면 교환을 바로잡는 방법도 사회적 합의에 따라야 한다. 이 사회적 합의란 다수에 의한 결정을 뜻하며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실행이다. … “노동자의 임금을 산업자본이 빼앗아 가고 산업자본의 이윤을 이자 형태로 금융자본이 또 빼앗아 간다. 이자라는 건 기생소득이다. 기생소득이 숙주소득을 넘어서면 붕괴한다.(한겨레, “한국 변혁운동 과학화, ‘자본’에 답 있다”, 2008.06.11)

단지 2008년만이 아니라 2010년에도 그는 “노동자들이 죽도록 일해도 겨우 죽지 않을 정도의 재생산 여력만 남기고 그들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부자들이 부등가교환을 통해 앗아가버리는 모순.”(왜 오늘 다시 ‘자본’을 들춰야 할까요, 한겨레, 2010년 9월 3일)이라며 여전히 부등가 교환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그는 왜 자꾸 교환문제, 부등가 ‘교환’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인가?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을 중심으로 해서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자본>을 해설하면서 왜 그에게 생산영역은 회피해야할 무엇이 되고 있는가?

오늘날 개량주의의 기본적인 특성은 기본소득론자들처럼 생산관계의 모순을 회피하고 분배의 문제로 접근한다. 공황에 대해서도 과잉생산과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소비를 늘리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접근한다. 과잉생산 공황의 문제도 생산에서의 내부 모순을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지 않고 단지 금융시스템의 문제, 외환위기 등으로 돌려서 금융 통제 강화를 공황 해결의 방법으로 제출한다.

강신준 교수 역시 노동자가 부등가 교환에 대해 임금을 점차적으로 높이면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지렛대가 확보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생산과정에서의 문제를 교환과정에서의 문제로 돌림으로써 생산관계 내부의 모순을 교묘하게 은폐하고 변혁이라는 실천적 결론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강신준 교수는 쏘련을 중심으로 하는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거대한 산별노조와 개량주의 노동자 정당을 가지고 있는 유럽의 사례가 현재로서는 유일한 노동자의 대안사회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꿈꾸던 사회는 아직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단지 그것이 지향하던 방향, 즉 타인을 위한 노동을 멈추고 여가시간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한걸음 다가선 사회가 있을 뿐입니다. 바로 지난 대선에서 주목을 받았던 북유럽 사회들이지요. … 비록 완전한 자유의 나라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북유럽의 나라들은 바로 이런 과학적 확신에 대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들 나라는 대부분 연간 노동시간이 1400~1600시간이며 기업의 의사결정에 노동자가 개입하는 공동결정제도(즉 생산의 사회화)를 갖추고 있습니다. 자유의 나라로 한 발짝 다가선 모습을 분명하게 보이고 있지요.(강신준 | 동아대 교수·경제학, [오늘 ‘자본’을 읽다]Ⅴ. 에필로그 : (2)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경향신문, 2013-03-22)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결정제도는 전형적인 노자 협조주의의 사례이다. 강신준은 이를 ‘생산의 사회화’라고 하는데, 그것은 자본주의 사적소유 체제를 철폐하고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집단적으로 소유하는 맑스주의의 변혁적 원칙과 완전히 다르다.

강신준은 북유럽의 ‘복지사회’가 내전과 제국주의와 전쟁을 치르고, 제국주의 포위 속에서도 우월한 계획생산 체제로 실업을 일소하고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각종 무상체제의 구축이라는 쏘련 사회주의의 거대한 성취에 자극을 받은 노동자들의 격렬한 계급투쟁에 대해 자본주의가 양보한 산물이라는 점,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자본과 자본가 국가의 공세, 쏘련 사회주의가 해체되고 나서 자본주의의 힘이 월등하게 되고 계급 역관계가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되면서 복지체제도 무너지고 있다는 점, 특히 2007년 말 시작된 전 세계적 공황으로 말미암아 유럽 전반에서 노동자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고 있고, 북유럽에서도 사민주의 정권들이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민주의 타협체제를 깨뜨리고 일방적인 공세를 취한 결과 사민당 정권에 대한 불만이 증대하여 연이어 집권세력으로부터 쫓겨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한다.

강신준은 자본해설의 결론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관계의 변혁”을 운운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고 북유럽 식의 사민주의 타협체제와 복지체제를 점진적으로 구축해나가다 보면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강신준은 자신을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에 반발하지만 그 주장이 베른슈타인식 수정주의가 아니면 무엇인가? 사물의 본질에 맞춰 정확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과학이 하는 역할이다. 강신준은 수정주의자다. 다만 맑스의 이름을 팔아 맑스를 왜곡하고 날조하는 수정주의자다.

맑스는 임금과 관련해서도 강신준 교수 같은 사이비 맑스주의자들에게 경고라도 하듯,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그리고 임금 제도와 관련된 전반적인 예속 상태는 아예 제쳐놓더라도, 노동자 계급은 이러한 일상적 투쟁의 궁극적 효과를 스스로에게 과장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결과와 싸우고 있는 것이 것이지 그 결과의 원인과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하향 운동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지 그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완화제를 쓰고 있는 것이지 질병을 치료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침없는 자본의 침략이나 시장의 변화로부터 끊임없이 생겨나는 이 피할 수 없는 유격전에만 전적으로 매달려서는 안 된다. 현재의 체제는 노동자에게 온갖 곤궁을 강요하지만 동시에 사회를 경제적으로 재건하는 데 필요한 물질적 조건들과 사회적 형태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공정한 하루 작업에 대한 공정한 하루 임금!’이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에 그들은 ‘임금 제도 철폐!’라는 혁명적 구호를 자신들의 깃발에 써넣어야 한다.(맑스, 저작선집 3권, 박종철출판사, 임금, 가격, 이윤, 117쪽)<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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