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회의 승리를 기원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센터 분회장의 장례가 44일 만에 치러졌다. 유가족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지회)는 ”최종범 열사, 염호석 열사의 꿈을 잊지 않고 투쟁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 검은 만장을 든 젊은 노동자들이 줄지어 섰다. ‘잘가라 석아’, ‘우리가 이겼다’, ‘호석아 사랑해’, ‘76년 무노조 끝’, ‘삼성전자 각오하라’ 등의 문구가 만장에 쓰였다. 상주를 자처한 동료들이 고인의 영정과 유골함을 들었다. 유골이 실종된 탓에 유골함 안에는 고인의 명함, 사원증 등이 대신 담겼다.

고 염 분회장은 지난달 17일 정동진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유서에는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지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십시오. 지회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하여 이곳에 뿌려주세요”라고 썼다.

   
30일 오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염호석 노동열사 전국민주노동자장>에 참석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상복을 입고 삼성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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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염 분회장의 유언에도 경찰이 시신을 탈취해 생모와 동료들의 반발을 샀다. 경찰은 “가족의 요청이 있었다”며 장례식장에 안치된 고인의 시신을 빼앗아갔고, 생모와 의견이 다른 생부는 고인의 시신을 화장해버렸다. 지회와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는 이 과정에서 삼성의 개입이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이들은 장례와 무관하게 시신탈취 부분 진상을 규명한다는 입장이다.

어릴 적 헤어졌던 아들의 소식을 듣고 지회와 함께 싸워왔던 염 분회장의 생모 김아무개씨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그는 “우리 호석이 마지막 가는 길, 제가 안아보고 싶었다. 그것마저도 경찰이 막아버렸다. 경찰이 왜 우리 아들을, 시신을 탈취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억울하고 분통하다”며 “마지막 우리 석이 가는 길 훨훨 날아가게 도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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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오늘 장례식은 염호석 열사를 바다에 뿌리는 장례식이 아니라 인류 문명을 말살하고 있는 삼성자본과 박근혜 정권을 땅에 묻는 장례식장이라고 선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열사를 가슴에 묻는다는 것은 때마다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열사가 바라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는 최종범씨가  “삼성에서 일하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라는, 최고의 AS를 자랑하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사연은 충격과 함께 삼성에 대한 여론의 반감을 낳았다.

이 같은 여론 때문인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들의 교섭권을 위임받은 한국경영자총연합회와 지회는 55일 만에 교섭을 타결했다. 당시 양측 합의안에는 △생활 임금 보장 △업무 차량 리스 및 유류비 지급 △건당 수수료 및 월급제 문제 논의 △노조 측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으며 향후 불이익 금지 △유족 보상 등의 내용이 담겼다. 

   
고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 양산분회장의 걸개 그림이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한 바퀴 돌고 있다. 고 염분회장의 시신을 탈취했던 경찰이 삼성전자 사옥 안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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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염호석 분회장의 영정이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을 한 바퀴 돌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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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진 것이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 3월 센터들의 폐업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해운대, 아산, 이천센터의 폐업을 두고 지회에서는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한 센터들을 압박하긴 위한 위장 폐업”이라고 주장해왔다. 이후 지회는 전면 파업을 벌이는 등 투쟁강도를 높이며 저항했으나 이 과정에서 염 분회장이 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난 것.

염 분회장의 죽음 이후 지회는 전면 파업을 선포하고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왔다. 그리고 노숙농성 41일 만에 노사합의가 이뤄졌다. 합의안에는 △고 염호석 관련 사과 △노동조합 활동 인정 △임금 및 수당 체계화 △폐업센터 고용 승계 등의 내용이 담겼다.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는 공지사항을 통해 “협력사의 교섭타결을 환영하고, 고인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사과했다. ‘협력사’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노동계에서는 사실상 삼성과의 첫 임단협 체결이라며 무노조 경영 신화를 깼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등이 을지로위원회 의원들과 만나 해결의지를 보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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