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시장은 ‘왜건(Wagon)의 무덤’일까. 그동안의 성적표만 놓고 보면 답은 ‘그렇다’이다. 기존 세단형 승용차의 지붕을 뒷부분까지 수평으로 길게 빼 뒷좌석과 트렁크 부분을 연결시키고 수납공간을 대폭 늘린 왜건형 모델은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찬밥 신세였다.
한국 시장에서도 왜건이 팔리던 시기가 있었다. 1990년대 누비라 스패건, 아반떼 투어링 등 기존 세단을 변형한 왜건 모델이 잇따라 출시됐다. 하지만 판매량은 신통치 않았다.
현재 국산차 중 왜건은 현대자동차 i40가 유일하다. i40는 ‘2011 유럽 올해의 차체기술상’을 수상했고 지난해엔 ‘러시아 올해의 차’ 가운데 중형차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i40의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5800여대에 그쳤다. 전년보다 절반 가까이 떨어진 수치다. 유럽에선 한 해 2만~3만대가 팔리는 것과도 차이가 크다. 유독 한국에서만 차량 자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는 다른 실적이 나오는 셈이다.
현대자동차 i40
BMW 뉴3시리즈 투어링
왜건의 부진은 수입차 브랜드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수입차 판매 1위 브랜드인 BMW의 경우 3시리즈와 5시리즈에 각각 왜건 모델인 ‘투어링’ 제품이 있지만 판매량은 150~400여대에 그친다. 지난해 BMW 전체 판매량 3만3000여대 중 2%가 채 안되는 비중이다. 푸조의 308SW와 508SW도 작년 판매량이 120~170여대 수준이다.
유명 왜건인 볼보 V60도 한국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V60는 지난해 볼보 전체 모델 중에서 단종된 컨버터블 모델 1종을 제외하면 판매량이 가장 낮다. 캐딜락의 왜건 모델인 ‘CTS 스포츠 왜건’ 역시 작년 국내시장 판매량이 캐딜락 브랜드 전체 판매량의 0.7%에 불과하다. 최근 한국 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이미 5~6년 전 왜건 모델 수입을 중단했다. 판매량이 한 해에 100대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왜건이 외면받는 이유로 디자인과 호환성을 지적한다. 왜건의 ‘짐차’ 같은 이미지가 디자인을 중시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왜건의 주소비자층인 30~40대 남성들은 왜건을 ‘한마디로 아빠차 같다’고 평한다. 넓은 적재공간 등 실용성이라는 장점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는 것도 왜건 부진의 이유다. 왜건은 대부분 가솔린차라 연비가 떨어지는데 SUV는 연비가 높은 디젤이다보니 상대적으로 효율성과 경제성 면에서도 밀린다.
하지만 일부 자동차 마니아 사이에선 차 뒷부분이 묵직해 세단에 비해 왜건이 오히려 안정감 있고 승차감이 좋다는 평가도 있다. 이 때문에 유럽 브랜드의 고성능 차량이 종종 왜건형으로 출시되기도 한다. 한 수입차업체 관계자는 “캠핑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는 데다 장기적으로 ‘세컨드 카’ 시장이 활성화되면 왜건의 입지도 점차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