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대첩. 9월 6일의 ‘폭식투쟁’에 대해 일베 회원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광화문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스런 단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은 유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게걸스럽게 치킨과 피자를 집어삼켰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얼굴을 감춘 채 인터넷에서 일탈을 즐기던 그간의 모습과 달리, 이제 우리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한목소리로 일베를 비난하며, 우리 사회가 위기에 처했다고 한탄한다. 위기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위기란 무엇인가?
점차 심화된 위기
이탈리아의 혁명가였던 그람시가 위기에 대해 탁월한 정의를 내렸다. “낡은 것이 사라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는 게 바로 위기다. 이런 공백기에는 매우 다양한 병적 징후들이 나타난다.” 일베의 폭식투쟁을 저 ‘병적 징후’의 대표 사례로 보더라도 전혀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사라지고 있는 낡은 것은 무엇이고, 생겨나지 않은 새로운 것은 무엇일까.
각각의 시기마다 지배계급은 나름의 가치관, 관습,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질서를 유지한다. 봉건시대로부터 근대화가 진행되던 초기까지, 유교전통이 강한 힘을 발휘하던 시기에는 노인의 권위를 매개로 젊은 세대를 기존 질서에 통합시켰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근면 자조 협동(또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같은 산업역군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했다. 이는 젊은층을 자본주의 노동규율에 종속시키기 위한 주요 수단이었다. 또한 이 시기에 체제 관리인 구실을 한 군부독재세력은 지배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
80년대 중반 이후 폭발한 민주화운동이 이 기틀을 흔들어 놨다. 가부장적 권위는 물론이거니와,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산업역군 이데올로기까지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이 됐다. 이렇게 낡은 것이 사라져가는 순간은 곧 새로운 질서가 등장해야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흔히 386세대로 불리는 세력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 세대가 그 역할을 자임했고,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당(열린우리당) 집권기가 그 정점이었다. 그들은 ‘좋은 세상’을 꿈꾸는, 민주화운동의 열기를 경험한 대중의 열망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는가?
대중은 어떻게 먹고살 건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을 산산조각 내며 IMF사태가 터지고 김대중 정권은 10년만 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촉구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흘려 노력하면 그래도 조금 더 나은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 양산하는 노동악법을 밀어붙여 노동자의 등에 칼을 꽂았다. 군부독재의 어두운 역사를 밀어냈다고 하면서도, 어느 때보다 많은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열사로 생을 마쳐야 했다. 빈부격차와 불안정한 삶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조롱하듯, 대자본가들의 지배력은 한층 더 강력해졌다. 승자, 강한 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정글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대안 부재의 결과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 이유가 무엇인가. 민주당(열린우리당)은 경제적 기반에서 자본가들의 이윤논리를 토대로 하며, 정치적 지향에서 명백히 한국의 자본가계급을 대표한다. 따라서 어떤 장밋빛 포장지를 두르더라도, 근본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지배를 강화하는 데 봉사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들은 87년 이래 노동자들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강력한 투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 노동자투쟁이 자본가들의 지배를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민주적 권리를 포함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서도 아주 소심해질 수밖에 없다. IMF사태 이래 끝없이 지속되고 있는 경제위기가 그들의 불안감과 초조함을 더 부추겼다.
결국 그들은 어떠한 새로운 질서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 뒤로 집권한 (역시 자본가계급의 대표인) 이명박과 박근혜는 이 흐름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정글을 더욱 우거지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이 가르쳐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에서부터, 젊은 세대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할 권리,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에 이르기까지, 저들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정치적 대표들에게 맡겨놓는 방식으로는 단 하나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현실이 젊은이들을 포함한 노동자계급 전체에게 좌절과 불만을 안겨주며, 대중 속에서 ‘사회’에 대한 믿음이 허물어지게 만들고 있다. 낡은 질서는 그렇게 무너지고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저들의 낡은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게 누구인가? 매일같이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며 그들을 위해 이윤을 만들어내고, 그러면서도 자본가계급의 양대 정당에게 정치적으로 농락당하는 계급, 즉 노동자계급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노동자들 자신이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지 못하고, 자기를 대표할 정당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나날이 빽빽해지는 자본주의 정글을 단칼에 베어낼 혁명적 전망, 미래사회의 전망을 움켜쥐지 못했다. 자본가정당들 사이에서의 정권교체를 넘어 자본가계급 전체를 역사의 뒤편으로 밀어낼 수 있을 만큼 정치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위기의 근원이 있다. 그 결과가 곧 ‘매우 다양한 병적 징후들’이다. 저 광화문대첩에 참가한 일베 회원들은 십중팔구 이십 대 전후의 젊은이들이었다. 지금 젊은층 상당수의 정서 밑바닥에는 ‘뭘 해도 안 된다’는 패배감이 짙게 깔려 있다. 그래서 자기 삶에서 희망도 재미도 찾을 수 없다. 자기들은 잉여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에 익숙해져 있다.
그것은 강자에 대한 동경으로 쉽게 전환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만한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힘이 없기 때문에, 단지 또 다른 약자를 혐오함으로써 자신도 권력집단의 일부라고 믿으며 위안을 얻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위안조차도 불안하고 무력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권리를 행사하는 걸 보며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를 느끼고, 심지어 힘겨운 투쟁으로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는 것에 대해서조차 이기적인 ‘무임승차’라고 비난하며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그 끝에 일베라는 괴물이 서 있다.
치료법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린다.
“그들은 관심종자이기 때문에 상대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게 최상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그들의 증오심은 증폭될 것이다. “말로 해선 안 된다, 그들을 힘으로 제압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자신을 순교자로 여길 것이며 한층 더 확신을 가지고 고개를 쳐들 것이다. “인터넷 안에서라면 봐줄 수 있지만 이번처럼 밖으로 나와서 난동을 부린다면 법적 처벌을 가해야 한다.” 법적 처벌은 그들을 위축시킬 수도 있지만, 이는 결국 우리 힘을 키우는 게 아니라 지배질서를 강화시켜줄 뿐이다.
우리는 처음에 “낡은 것이 사라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는 게 바로 위기”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새로운 것, 새로운 질서,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 말고 이 위기를 끝장낼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 이렇게 하려면 노동자들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일부 조합원들의 배타적 이익을 관철하는 데만 관심을 갖거나, 그조차도 못하는 지금의 허약한 노동자운동은 젊은 세대에게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한다. 아무런 기회도 얻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조합주의에 찌든 노동자운동은 그저 이기적인 집단의 몸부림으로 비칠 뿐이다.
새로운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만들어내는 데에서 답을 찾아보자. 조직된 노동자운동이 ‘최저임금 1만원 쟁취’를 내걸고 완강한 총파업을 벌일 수 있다면, 알바를 전전하며 최저임금도 못 받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실마리를 건네줄 수 있다. ‘조합원 우선 정규직화’나 ‘조합원 자녀 우선채용’ 같은 배타적 요구 대신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 비정규직 철폐,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보 같은 노동자계급 전체의 요구를 목표로 투쟁한다면, 그간 노동자운동에 덧칠돼 있던 이기주의 집단이라는 오명을 조금씩 벗겨낼 수 있다.
그렇게 하는 만큼, 이 사회에서 진짜로 무임승차하는 자들은 이재용, 정의선 같은 세습 재벌3세들, 더 나아가 모든 자본가들이라는 진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하는 만큼 노동자들의 힘은 커질 것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도 자라날 것이며, 젊은층이 막연하게 품고 있는 분노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에 기생하는 자본가계급에게 정확히 꽂힐 것이다.
노동자들이 그런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그리고 실제로 착취와 경쟁과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정글을 베어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일베와 같은 병적 징후를 치유할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10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