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정치신문 105호(통합117호)] <세월호 투쟁을 둘러싼 쟁점들>
세월호 투쟁을 둘러싼 쟁점들
기나긴 애도와 추모의 시간이 지나갔다. 세월호 투쟁은 이제 명백히 정치투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중집회에서는 “박근혜가 책임져라!”라는 구호가 사라지고 “박근혜는 사퇴하라!”는 구호가 대중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세월호 범국민대책기구 내의 일부 단체들이 박근혜 퇴진 기조를 반대하고 있는데, 그것은 대중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대중집회에서 직접 확인했다. 물론 세월호 투쟁이 정치투쟁으로 나아간다고 해서 이 투쟁이 더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반드시 더 고양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투쟁에서 박근혜 퇴진을 내걸고 투쟁하고 있는 세력들 내에서도 쟁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고 원인, 퇴진을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 박근혜 퇴진을 위해 어떻게 노동자들을 이 투쟁에 참여시켜야 하는지를 둘러싼 방법의 차이, 자본과 권력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 등이 입장 차이를 낳는 배경이 되고 있다. 정치투쟁의 확산과 강화를 위해 이러한 쟁점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1. 사고 원인을 보는 차이와 투쟁 방향의 문제
일반적으로 선박 증축, 과적, 개조, 규제완화, 비정규직 선장, 신자유주의 시스템, 이윤이 중심이 되는 사회, 탐욕의 자본 등이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대다수 단체와 노동조합, 심지어 정부나 언론에서도 대개 이 입장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밖에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잠수함과의 충돌설, 사전 기획설, 선체 내부 폭발설, 사고에서 사건으로 비화설 등을 의혹으로 제기하는 입장도 있다. 그리고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을 해야 하지만, 침몰하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구조하지 않은 살인 범죄 행위에 대해 정부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세월호는 어떤 알 수 없는(혹은 공개되지 않은) 원인에 의해 침몰했다. 그런데 박근혜는 승객들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았다. 정부와 단독 계약을 맺은 업체인 언딘도 구조목적이 아니라 선박 인양 목적으로 참여했다고 고백했다. 왜 구조하지 않았을까? 박근혜 정부의 구조활동(?) 과정을 보면 세월호 침몰이 단순한 사고나 과적, 운전미숙 등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고 의심케 한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침몰 원인을 은폐하기 위해 승객들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는 대학살을 자행한 거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을 가지게 된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철저한 은폐, 통제로 인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박근혜 정부의 300여 무고한 노동자민중에 대한 대학살 과정을 통해 볼 때 그 원인은 박근혜 정부를, 아니 한국 사회를 격변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거대한 무언가일 거라고 충분하게 의심할 수 있다.
물론 잠수함 충돌설, 사전 기획설 등은 아직 정부가 여론을 통제하고 사고 원인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확증(確證)된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잠수함 충돌설 등이 아직 확증된 사실이 아닌 것처럼,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선박 증축, 과적, 개조 등도 확증된 사실이 아니다. 다만 이러한 사실들은 현재로서 침몰의 직접적 원인은 아닐지라도 침몰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던 문제들이다.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고 원인들, 정부나 관제언론들이 은폐하고 있는 사고 원인들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투쟁해야 한다. 직접적인 침몰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은 음모론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제제기다. 확증된 진실로 드러나기 전에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진실로 한 발짝 다가가는 데 있어서 가장 올바른 길이다.
지금까지 국가권력은 대선에서 박근혜를 당선시키기 위해 국정원, 보훈처, 군사이버 사령부 같은 권력기구를 총동원한 댓글부대 운용으로 선거 조작을 일삼았고, 국정원과 검경이 합동으로 내란음모 조작,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을 자행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하여 정부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거나 은폐, 조작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는 중요하다. 이러한 정치공작에 자본언론들이 동참해 왔기 때문에 KBS 노동자들은 기레기(기자 쓰레기)가 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파업 투쟁에 당당하게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선박 증축, 과적, 개조, 규제완화, 비정규직 선장, 신자유주의 시스템, 이윤이 중심이 되는 사회, 탐욕의 자본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싸워야 한다. 박근혜가 지난 5월 1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고를 막기 위해 국가안전처를 만들고 국가개조를 하겠다고 하지만, 이러한 사고 과정에서 드러났던 해묵은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건드릴 수 없기 때문에 이점에 대해 폭로하고 싸워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직전까지 규제는 ‘암 덩어리’고 “쳐부숴야할 원수”라고 규정해 왔던 박근혜의 책임을 묻고 규탄해야 한다. 더군다나 안전대책을 말하면서도 여전히 자본을 위한 규제완화를 계속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의 대책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폭로해야 한다. 자본의 이윤을 최대로 보장하기 위해 안전에 대한 투자를 점점 더 줄이고, 인력을 감축하고 있으면서 안전대책을 말하는 것이 허구라는 것을 폭로해야 한다.
지금 정권과 검찰에서 공공기관, 지자체 관료 출신 직원이 퇴직 후 산하 공공기관 또는 민간단체에 재취업해 저지르는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외치는데, 이는 금권정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생명 보다는 이윤을 위한 사회,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므로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벌어질 것이라는 점을 폭로해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이 이 자본을 위한 사회에서 국가권력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개별적 요구들을 박근혜 퇴진 투쟁으로 집중시켜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스템, 이윤체제의 문제에 대해 비판하면서 박근혜 퇴진 투쟁을 근본적 요구가 아니라고 하면서 소홀히 하는 입장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이 투쟁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설사 위에서 든 것들이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사고 이후에 “단 한명도 구하지 않은” 정부의 살인극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구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구하지 않았다”
“사고가 아니라 학살이다.”
이는 수없이 많은 근거로 확인된 사실이기 때문에 이 학살극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대중들이 박근혜 퇴진을 내걸고 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도 바로 단 한 명도 구하지 않고 300여 명 이상의 생명을 몰살시킨 정권에 대해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 성원들이 이 참사 앞에서 내뱉었던 추악한 망언들, 뻔뻔한 행태들, 정권의 연출된 추모들, 이 살인 범죄의 공동정범으로 나선 언론들의 작태가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2. 세월호 투쟁에서의 경제주의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경제주의의 문제를 제기했는데, 세월호 투쟁에서도 어김없이 경제주의는 집요하게 반복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세월호 투쟁을 통해서 전면적인 정치투쟁으로 떨쳐 일어서고 있지 않으니 비정규직, 사유화, 작업중지권 등 현장의 현안 문제와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구들은 개별적 요구로써가 아니라 박근혜 퇴진과 결합시켜야 하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현장의 현안 문제와 결합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충분하게 경계하면서 제기해야 한다. 먼저 세월호 침몰 전후 권력과 언론이 합작해서 사건 원인을 은폐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사고 원인을 확증하고 국가권력과 언론이 은폐하고 있는 사고의 진상규명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월호 학살 범죄에 대하여 청와대와 박근혜를 정조준해서 투쟁하는 것을 회피하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청해진 자본과 세모자본을 집중 압박하는 시점에서 투쟁의 표적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중동조차도 박근혜를 비롯한 권력의 심장부를 보호하기 위해 개별 이윤과 탐욕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음을 상기해 보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입장은 오로지 노동자의 직접적인 현안 문제, 경제적 요구들, 현장문제만을 가지고 정치투쟁으로 나아가려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학살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정치폭로가 빠져 있다. 현장 노동자들에게 세월호 학살이라는 가장 첨예한 정치문제, 계급투쟁의 문제를 가지고 정치투쟁으로 떨쳐 일어서자고 직접적으로 정치선동을 하지 않고, 또 그것을 조직하지 않아서 문제이다.
“노동자 계급의 주의, 관찰력, 의식을 배타적으로, 혹은 그렇지는 않더라도 우선적으로 노동자 계급에게로 돌리려는 자는 사회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자 계급의 자기 인식보다는 정치 생활의 경험에서 생겨난, 현대 사회의 모든 계급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충분하고도 명료한 이해와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제 투쟁이 대중을 정치 운동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우리 ‘경제주의자들’의 설교는 그 실천적 중요성으로 볼 때 극히 유해하며, 극히 반동적이다. …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하다못해 귀엣말로 소곤거리면서라도 나름대로 얘기하고 있는 일들, 그리고 여러 사건들, 수치들, 판결문 등등에서 드러나고 있는 일들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고, 그 때 그 때 놓치지 않고 폭로하는 것만이 그러한 이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이러한 전면적 정치 폭로는 그 자체로 대중의 혁명적 활동성을 교양하는 필수적이고도 기본적인조건이다.
인민에 대한 경찰의 야수 같은 대우, 이교도 사냥, 농민에 대한 구타, 추악한 검열, 병사들에 대한 학대, 이제 막 시작된 가장 순수한 문화 사업에까지 가해지는 탄압 등등에 대해 왜 러시아 노동자는 아직까지 별다른 혁명적 활동성을 보이지 않고 있는가? ‘경제투쟁’이 이를 ‘부추기지’ 않고 있기 때문인가? 이런 활동이 ‘가시적인 결과들’을 거의 ‘약속하지’ 않으며 ‘적극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기 때문인가? … 우리 대중 운동의 후진성에 대한 책임은 당연하게 우리에게 있으며, 이 모든 추악한 일들을 충분히 신속하고 명료하게 널리 폭로할 능력이 우리에게 아직 없었던 것도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가 이 일을 한다면(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며, 또 할 수 있다). 학생들, 이교도들, 농민들, 작가들 위에서 광폭하게 날뛰면서 그들을 능멸하는 그 검은 세력이 바로 자신의 생활 곳곳에서 자신을 억누르고 핍박하는 세력임을 가장 평범한 노동자라도 깨닫게, 또는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런 것을 느끼게 되면, 자기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에게 호응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늘은 검열관에게 야유를 보내고, 내일은 농민 반란을 진압한 지방 행정장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모레는 종교 재판을 담당하는 법복 입은 헌병들을 단단히 혼내 주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노동자 대중에게 생생하고도 전면적인 폭로의 세례를 안겨 주기 위해 변변하게 한 일은 아직까지 없다. 아니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우리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이 같은 자신의 의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공장 생활이라는 좁은 틀 안에서 ‘지리한 일상 투쟁’의 뒤를 자생적으로 종종 따라다니고 있다.”<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긴 인용문이지만, 레닌이 당시 러시아의 활동가들에게 외쳤던 경고는 오늘날 우리 운동에도 생생하게 적용된다. 마치 우리를 향해 직접 레닌이 호소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주장이다.
세월호 300명 이상의 몸서리치는 학살극을 보면서도 분노로 떨쳐 일어서기에 부족한가? 그렇다면 수 천 명, 수 만 명이 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분노가 형성될 것인가? 이 학살극을 은폐하기 위해 언론과 협잡하고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배계급 인사들이 내뱉는 짐승과 같은 망언들을 보고도 투쟁으로 떨쳐 일어서기에 분노가 부족한가? 현장의 현안 문제와 결합하지 못해서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세월호 학살극이 벌어지기 전에 왜 노동자들은 자신의 현안문제를 가지고 전면적인 박근혜 퇴진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했는가?
노동자들이 자신의 직접적인 현안문제가 아니고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우리 운동이 지체되고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령 개인적으로 분노와 관심을 가진다 하더라도 노동조합 차원의 투쟁으로 전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조합주의나 경제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주의, 관찰력, 의식을 우선적으로 현장 내부의 쟁점으로만 돌리고, 정치생활의 경험에서 생겨난, 현대 사회의 모든 계급들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한 정치세력들도 여기에 커다란 책임이 있다.
이미 대중들이 일상적으로 제기하고 투쟁에 나서고 있는 문제, 현장의 노동자들이 쉽게 받아들이는 요구만을 가지고 정치투쟁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은 혁명적 정치활동의 과제를 팽개치고 대중의 뒤를 쫓아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조합주의, 경제주의 수준에 영합하여 우리 운동 내부의 협소하고 편협한 경제주의를 고착화 시킨다. 노동자들의 진정한 정치의식을 높이지 못하게 만들고 정치적 전망을 질식시킨다.
2014년 5월 20일 <노동자행동> 선전물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당면 목표에 동의하면서도 그 투쟁 방향에 대해 입장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선전물 앞면 글의 핵심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고입니까? 학살입니까? 학살입니다. … 안전한 사회를 떠들어대면서 이 모든 현실을 은폐하고 부추기고 있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국가‘안전처’는 기만입니다. 자본가들을 위한 국가야말로 노동자 민중의 불안전한 삶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재난 기구입니다. … 이제 전체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박근혜 정권을 몰아냅시다. 노동자 민중을 탄압하고 끔찍하게 죽음으로 몰아넣는데 앞장서온 박근혜야말로 이 모든 재난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럽게 몰살을 당해야 했던 수 백 명의 원혼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새로운 참사를 막기 위해 들불처럼 일어납시다.”(“국가안전처요? 박근혜가 재난의 원흉! 세월호 학살 책임자 박근혜를 몰아내자!”)
뒷면 글의 핵심 요지는 다음과 같다.
“노동자들이 현장의 문제를 제기하며 안전의 문제를 통제하는 것. 이것이 참사를 막는 출발점이지 않겠습니까? … 민영화 반대, 비정규직 철폐, 작업중지권 쟁취 등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앙카라, 이스탄불, 이주미리 등에서 수만 명의 노동자민중이 ‘소마 참사는 단순한 사고도, 운명도 아니며 살인’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정부퇴진’을 외치며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 우리도 그렇게 싸울 수 있는 힘을 차분하고 끈질기게 만들어 거대한 투쟁을 준비합시다!”(침몰하는 사회, 더 이상 자본가들에게 맡길 수 없다!)
앞면의 글은 학살만행을 저지른 박근혜 정권에 대한 투쟁에 집중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의 기만적 재난 대처 방안이 허구이고 박근혜 정부야말로 재난의 원천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박근혜를 몰아내기 위해 투쟁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뒷면의 글은 현장의 다양한 현안 요구를 내걸고 투쟁을 확장시키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터키에서 탄광참사는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라며 반정부 투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언급하면서도, 당장 우리도 정치투쟁으로 떨쳐 일어서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현장의 요구를 내걸고 “힘을 차분하고 끈질기게 만들어 거대한 투쟁을 준비”하자고 한다. 현장의 힘을 모아서 먼 미래의 어느 날에 정권 퇴진 투쟁을 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이 입장은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정권퇴진 투쟁이라는 정치투쟁의 문제를 회피하도록 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박근혜 퇴진 요구가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넘어서 좀 더 조직적 힘으로 분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현장의 요구들을 백화점 식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퇴진을 중심으로 집중시켜야 하고, 수없이 널린 독자적인 정치폭로의 소재들을 가지고 정치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박근혜 퇴진을 현실화 시키고 그것의 정치적 전망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고 확신을 가지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을 가로막는 세력들을 비판해야 한다.
3. 근본주의로 첨예한 정치투쟁을 회피
우리 운동 진영 내에는 경제주의와 함께 근본주의가 공존하고 있다. 경제주의와 근본주의는 기묘하게도 동전의 양면이다. 이른바 한국사회 ‘좌파’라 자임하는 단체들 대부분이 이러한 입장들을 대체로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박근혜 정권이 퇴진한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철폐되느냐?” “사회의 근본구조가 달라지느냐?” 그리고 “박근혜 규탄의 목소리를 거리에서 모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운동이 스스로 시민 안전에 관한 대안이 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주장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에 대해 협소한 시야로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사물의 긴 발전 과정에서 각 발전 단계에 대한 인식이 없다. 사물의 모순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집중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주요모순과 부차적 모순을 구별하고 각 국면 마다 주요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지금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은 박근혜 정권 대 노동자 민중과의 모순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총체적 부정선거로 등장해서 내란음모, 간첩조작 사건을 일으키고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 조치를 강화해온 박근혜 정권과의 투쟁은 세월호 참살에서 더 집중적이고 극명한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월호 참살은 박근혜 정권의 반동적이고 추악한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여줬다. 박근혜 퇴진 투쟁은 자본을 위해 반동적 조치를 강화해 온 정권에 맞서는 정치투쟁이다.
박근혜 정권이 퇴진한다고 해서 곧바로 자본주의가 철폐되지도 않고 사회의 근본구조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으로 눈앞에서 자본을 위해 폭력만행을 저지르는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지 못하면서 자본주의가 철폐되고 근본구조가 달라질 거라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 정권을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끌어내린다면 그 자체로 근본적 해방은 아니지만 4.19 이후에 가장 거대한 정치적 격변이 될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경제적, 정치적 권리가 현저하게 향상될 것이다. 자본과 권력과의 힘 관계에서 노동자들이 우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고 이는 노동자 민중이 근본변혁으로 나아가는 거대한 기반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정치는 경제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이다.”라고 레닌이 말했다.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사적유물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자본의 문제를 제기해야만 더 급진적 요구인 것이 아니다. 지금 이 투쟁은 이미 총자본의 집결체인 박근혜 정권 퇴진이라는 정치투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월호 학살극을 저지르고 자본을 위해 억압기구를 유지하고 노동자 민중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폭력을 구사하고 있는 권력과의 투쟁이다.
세월호 투쟁에서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 철폐를 무매개적으로 주장한다면 먼저 박근혜 퇴진 투쟁에 나선 대중들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될 수 있다. 이 주장은 또한 정치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원론적인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첨예한 투쟁을 회피하게 되면서 의도와 다르게 근본 모순 철폐 투쟁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 시기 조중동 등이 박근혜로 향하는 대중들의 분노와 관심을 돌리기 위해 신자유주의 시스템과 자본의 이윤추구 등에 대해서 사뭇 비판적인 어조로 반자본주의 언사를 내뱉는 이유에 대해 통찰해 봐야 한다.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을 전면에 내걸지 않고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문제, 시민안전을 위한 장기적 대안 같은 주장들만 한다면 가장 구체적이고 첨예한 문제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로 돌리게 할 수 있다. 권력을 향한 당면한 첨예한 투쟁 목표를 흐리게 할 수 있다.
4. 노동자들이 박근혜 퇴진 투쟁을 주도하자!
정권의 언론 장악에 분노해서 KBS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에 나섰다. 교사들이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박근혜 퇴진을 내걸고 시국선언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한 정치폭로를 통해 정권을 겨냥한 정치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정부는 세월호 학살극 진상 규명 주체가 아니라 학살극 최종 책임자로서 단죄 받아야 하는 범죄 피의자임을 부각시켜야 한다. 부정선거 댓글 조작, 내란음모 조작, 간첩 조작, 세월호 조작 등 찬탈, 조작 정권의 실체를 폭로하고, 이 공작의 중심에 있는 국가정보원 해체를 주장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경제적 제 권리를 유린해온 정부에 맞서 싸워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해체하고 구속자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이건희와 삼성자본과 더불어 자본가들을 비호하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해서 열사 시신을 탈취하고 동지들을 구속시킨 박근혜 정권을 향해 투쟁해야 한다. 철도 노동자들은 세월호와 같은 참사를 낳을 것이 뻔한 사유화를 폭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즉각 재파업에 돌입해야 한다. 서울지하철, 도시 철도 노동자들은 시민안전, 노동자 안전을 위한 대대적인 인력충원을 내걸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 전교조는 퇴진선언에 나선 교사들을 징계로부터 보호하고 노조 차원에서 3차, 4차 대중적인 퇴진 선언을 조직해야 한다. 전교조와 공무원 노동자들은 노동3권을 부정하고 노조파괴를 일삼아 온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리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전북 지역 버스 노동자들은 진기승 동지 투쟁을 대정부 투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현장의 조직력이 당장 되지 않는 현장은 박근혜 퇴진 집회에 집단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7월 중순으로 미룰 것이 아니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어차피 한날한시에 전체 사업장이 참여하는 총파업은 당장 이뤄지지 않는다. 임단협 시기 집중 투쟁을 가지고 거기에 정치투쟁이라고 명명한다고 해서 정치투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적더라도 정권이 주춤거리고 있을 때 기세를 모아서 총공격을 감행해 들어가야 한다.
차분하고 끈질기게 힘을 비축하여 박근혜 정권 퇴진이라는 정치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을 통해 불리한 계급역관계를 일거에 뒤집어야 한다. 현장사안만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힘이 분출되는 것만은 아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경험을 보라!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이라는 거대한 민주주의 투쟁의 성과 위에서 노동자들이 계급적으로 각성하고 87년 노동자대투쟁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이제 노동자 계급이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리는 정치투쟁에 주도적으로, 전면적으로 떨쳐 일어서자! 해방을 향해 나아가자!<노/정/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