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보긴 하겠지만 아마 힘들 겁니다.” “중요한 문제이긴 한데요. 어쩌죠? 어렵게 취재하시는데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노동조합 있는 사업장에선 그런 사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노조가 없는 경우엔 사례를 증언해줄 노동자 찾기가 어렵고요.”
최근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위반 관련 중요한 사례 2가지를 조사해 폭로한 바 있다. 하나는 전국 7개 주요 공단 노동자 1291명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인데, 법정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비율이 무려 24.5%로 공단 노동자 4명 중 1명이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하나는 공공부문 최저임금 위반 사례인데,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예산(세출사업명세서)에 나타난 비정규직 인건비 편성내역을 조사한 바 있다. 세종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 241개의 광역·기초단체 예산을 분석한 결과, 무려 112개 자치단체에서 최저임금을 위반한 예산 설계가 이뤄지고 있었다. 거의 절반(46.4%)의 자치단체가 예산을 편성할 때 올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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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지 사례 모두 충격적인 조사 결과로, 많은 언론사들의 뜨거운 관심과 취재가 이어졌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인터뷰가 가능할까요?” 기자들 입장에선 당연히 이런 관심을 갖게 마련이지만, 취재 협조를 해야 할 내 입장에선 난감하기 그지없다. 내가 소개시켜줄 수 있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고, 최소한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최저임금 위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사업을 하다보면 최저임금 위반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 문제로 우리를 찾아오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동조합 결성에 나서게 되고, 노조가 설립되면 최저임금 위반은 모두 시정된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 몰려 있기 마련이다. 설령 그런 노동자를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기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다보니 최저임금 위반을 얘기하는 순간 사업주로부터 해고를 비롯한 갖은 탄압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 취재 협조를 제공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최근 구조조정 논란이 뜨거운 조선업 문제이다. 아무래도 비정규직 관련 일을 하고 있다보니, 상당수의 문의는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요청이다. 하지만 수십만명에 달하는 규모에 비해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조선소 사내하청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다행히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003년 노조를 결성해 폐업과 집단해고 등 숱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10년 이상 활동을 지속해온 터라 그쪽을 소개해주곤 하지만, 많은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해고 사례 역시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은 투쟁을 통해 막아내는 경우가 많아 기자들이 원하는 사례를 찾기 어렵기도 하다.
“최저임금 위반이 이렇게도 많은데 대체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은 뭘까요?” “1년에 수천명씩 잘려나가는 조선소 사내하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뭐라고 보시나요?”
당연히 정부가 의지를 갖고 근로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동안 경영을 잘못 한 재벌 총수 일가들로 하여금 사내하청 고용 유지를 위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해야 하며,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렇게 답을 해주곤 하지만, 기자들도 알고 답변하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정부와 재벌 총수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해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발상을 좀 바꾸어 봤으면 한다. 최저임금 위반을 바로잡는 일,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는 길, 어쩌면 답은 간단한 곳에 있다. 노동조합이 결성되면 최저임금 위반은 쉽게 시정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동료들과 함께 투쟁하는 방법을 선택하며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구조조정에 맞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은 바로 노동조합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최저임금 위반에 분개하고 사내하청 대량 해고에 함께 마음 아파하는 기자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다. 저임금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 해고되어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이런 얘기들을 소개하고 다뤄주면 어떨지 말이다. 법정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던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불법을 바로잡은 사례들, 협력업체 폐업이 벌어져도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고용을 유지한 사례들, 그런 사례라면 정말 무궁무진하게 취재에 협조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언론이 그런 얘기를 해줄 때 민주노조운동 역시 이들의 조직화를 위한 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이 정부에 최저임금 위반 근절 대책, 조선소 사내하청 고용 안정 대책을 촉구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직접 나서 얘기할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와 재벌을 압박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대안이 되어줄 것이다.
최저임금 위반이나 사내하청 고용불안 문제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자들의 최소한 권리 역시 노동조합이 있어야만 지켜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로계약서는 서면으로 작성해 노동자와 사업주가 각각 1통씩 보관하고 있는가? 취업규칙은 사업장 내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게시되어 있는가?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사업주가 취해야 할 여러 조치들은 제대로 행해지고 있는가?
노동조합 결성과 가입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내 삶을 지키는 최선의 선택, 노동조합 가입’, 이런 헤드라인을 보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구조조정과 저임금, 1000만 비정규직 시대에 신음하는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한 길이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