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시에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더니만, 시절이 수상하고 비상하니 산도 산이 아니요 물도 물이 아니다.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는 일체유심조의 말씀이 결코 어긋나지 않음을 실감한다. 대통령의 그릇된 생각과 행위가 힘겹게 살아가는 중생들의 가슴에 상심의 대못을 박고 분노의 불길을 지폈다. “대통령이 국민을 속이고 농락했다!” 분한 심정으로 살아가는 우리 시대 중생들은, 그래서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비정상적인 판단력을 지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지금, 그럼에도 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선언한 아이러니라니! 세간에 유행하는 ‘웃프다’라는 말이 이런 것인가 싶다. 탐욕과 거짓이 극에 이르면 시대의 얼굴은 이렇듯 비극과 희극의 두 모습을 지닌다.
마음을 다스리고 지혜를 구하고자 향을 사르고 경전을 펼쳤다. 중국 선종의 전적인 <무문관(無門關)>, 새삼 지도자의 자질과 자격에 대한 설화에 마음이 꽂힌다. ‘백장야호(百丈野狐)’는 교사로서 수행자들이 새겨야 할 지침으로 널리 회자되는 설화이다. 백장 선사는 중국 당나라 시대 선종의 큰스님이다. 백장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규칙을 정해 노동과 수행이 일치하는 수행가풍의 토대를 만들었다.
선사의 법문에는 늘 많은 대중이 모였다. 하루는 법문이 끝난 뒤에도 한 노인이 남아 있었다. 백장 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뉘신가?” 노인이 답했다. “저는 오래전 이 산에서 주지로 살았는데, 어느 날 한 학인이 ‘위대한 수행자도 인과에 떨어집니까?’라고 묻기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因果不落)’라고 답했습니다. 그 과보로 저는 오백 생 동안 여우 몸을 받아 이리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 처지를 바꿀 수 있도록 한 말씀 해 주십시오.” 그러고는 학인에게 받았던 질문을 되물었다. “위대한 수행자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선사가 답했다. “인과에 어둡지 않다(因果不昧).” 노인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깨우쳤고, 백장은 노인의 부탁대로 그가 벗어버린 여우 몸을 찾아 수행자의 예로 다비해 주었다.
‘인과불락(因果不落)’과 ‘인과불매(因果不昧)’, 대비되는 말이다. 인과는 어떤 행위에 대한 결과이다. 폭력과 거짓을 일삼으면 마침내 그것이 들통나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된다. 뿌린 대로 거두는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그런데 여우의 몸으로 태어난 수행자는, 부처나 위대한 도인은 도덕률을 초월한 존재라고 믿었기에 인과불락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백장 선사의 생각은 달랐다. 위대한 성인은 자신의 생각과 언행이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고, 그 행위가 불러오는 결과를 잘 알기에 그릇된 언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기에 행할 것은 행하고 행하지 않을 것은 행하지 않음, 그래서 인과불매(인과에 어둡지 않다)라고 했다. 말(言)은 곧 방향을 가리킨다. ‘인과불락’이라 하여 중생을 그릇된 길로 안내한 수행자가 오백 생 동안 여우 몸을 받은 까닭이다.
거짓말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잘못된 사상과 견해를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대중들에게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경우 무지(無知)는 바로 죄악이 된다. 사유는 말을 낳고, 널리 퍼진 말은 다시 동시대의 관념이 되고 문화가 된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나 파시즘 등의 사상과 믿음을 강요하는 지도자가 무서운 것이다. 두 번째는 어떤 사실과 행위에 대해 아니라고 잡아떼고, 숨기고 오히려 뒤집어씌우는 거짓말이 있다. 두 가지 중 박근혜 대통령의 거짓말은 어디에 해당하는가.
나는 대통령의 불통과 무능과 부패에도 분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가 재임 기간에 해온 거짓말이 서글프다. 박 대통령은 들통이 나고서야 사과한다. 그런데 자신의 과오에 대한 사과만 한다. 진실과 사실을 숨기고, 부정하고, 역공한 것, ‘거짓’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거짓말한 죄를 사죄합니다.” 이렇게 거짓을 말한 죄를 사죄하지 않았기에 그가 한 모든 ‘말’은 거짓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 유족을 언제든지 만나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뒷날 “말 좀 들어 달라”는 유족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유유히 걸어가던 그 모습을.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 대통령의 거짓에 주목하고 분노해야 한다. 거짓을 용서하지 않을 때만이 거짓의 역사는 단절된다.
우리의 대통령은 참으로 초라하고 불쌍하다. 지금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있을까? 지금도 최태민이 옳고 최순실이 옳다고 믿고 있을까? 위기에 처한 자신의 처지만을 생각한 나머지 측근들을 배신자라며 원망하고 분노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국민을 속인 거짓에 부끄러워하고 있을까? 아니 속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는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