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이 공장 폐쇄 발표 이후 ‘희망퇴직’, 비정규직 해고, 임금·조건 후퇴 등 대대적인 공격에 착수했다.
이 와중에 전 직원의 15퍼센트에 해당하는 2500여 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공장 폐쇄가 결정된 군산 공장 인력(2000여 명)을 웃도는 숫자다. 신청자들은 주로 군산 노동자들과 정년을 앞둔 고령자들이었다.
이들이 처음부터 저항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군산 노동자들은 1000여 명이 집회에 참가하는 등 공장 폐쇄에 가장 크게 반발했다.
안타깝게도 한국GM 노조 지도부는 노동자들에게 사측의 강공에 맞설 투쟁의 ‘희망’을 제공하지 못했다. 적잖은 노동자들은 차라리 위로금이라도 받는 게 낫겠다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돌아섰다.
노동자들은 말한다. “사측이 비정규직을 해고한 게 신의 한 수였어요. 우리도 저렇게 해고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실제로 강제 퇴직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렇게 불안이 커졌던 겁니다.”

사측이 2월 28일 군산 공장의 비정규직 전원(200명)에게 해고를 통보하기 바로 며칠 전, 노동조합(한국지엠지부 군산지회) 집행부는 2014년에 비정규직 해고를 수용했던 것을 후회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그것이 결국 정규직 고용도 지키지 못했다면서 말이다.
이번에 노조 집행부는 비정규직 해고에 반대했지만, 이를 막기 위한 행동을 실제로 조직하지는 않았다.
효과적이기로는 일부에게 ‘살생부’가 전달되기 전에, 비정규직 해고가 통보되기 전에 단호하게 투쟁에 나섰어야 했다.
2009년 영웅적인 쌍용차 점거 투쟁조차 현장에 해고자 명단이 돌기 전에 투쟁에 돌입했다면 하는 큰 아쉬움이 있었다. 그랬다면 노동자들이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져 갈등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지엠지부와 금속노조 지도부는 노동자들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GM 실사에 노조 참여 보장, 안정적 자동차 생산 유치를 위한 노정교섭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자리 보호를 위한 효과적인 대안에 대해서는 ‘군산공장 폐쇄 용인하려는 문재인 정부: 지금 국유기업화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를 보시오.)
그러나 정작 노동자들의 당면 고용과 조건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힘을 쏟지 않고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중요한 점은 사측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군산공장 폐쇄와 임금·조건 하락 압박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한국GM은 임금 동결, 성과급 미지급, 승진 유보, 학자금 지급 제한, 복지 포인트와 식대 삭제 등으로 노동자들을 쥐어짜 연간 수천억 원을 줄이겠다고 한다. 창원·부평 공장도 ‘인력 과잉’이라거나, 신차 배정을 두고 한국과 멕시코가 경쟁하고 있다고 노동자들을 협박하면서 말이다.
안타깝게도 노조(한국지엠지부) 지도부는 최근 다시 임단협 교섭에 임하면서, 사측이 제시한 안을 거부하지 않고 일단 접수해 논의에 부치겠다며 한 발 후퇴했다.
그러나 본지가 거듭 주장해 왔듯이, 임금·조건 양보는 일자리를 지키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노동자들의 사기를 꺾고 분열과 반목을 심화시키기 때문에, 반복되는 사용자 측의 공격에 맞서 일자리 지키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반대로 당면 공격에 맞서 저항하고 연대를 건설한다면, 조건 후퇴를 막고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자동차·금속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방어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지금 국유기업화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
“돈이 안 되면 떠난다.” GM 최고경영자 메리 바라의 신조다.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삶이 자본주의의 냉혹한 이윤 논리 때문에 송두리째 파괴될 위기에 놓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이런 광경을 거듭 봐 왔다. 한국GM의 전신인 대우차 노동자부터 쌍용차 노동자, 그리고 최근 조선소 노동자들까지.
그때마다 정부는 일자리를 보호하기는커녕 ‘살인’과도 같은 해고로 노동자들을 내몰았다. 시장은 좋은 것이니 그 논리에 맡겨라. 그래야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기업을 회생시켜 줄 때도 노동자들에게는 희생이 강요됐다.
“시장 중심” 구조조정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한 문재인도 이와 근본적으로 다른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그러기는커녕 문재인 정부의 경제부총리 김동연은 3대 원칙 중 하나로 “이해당사자의 고통분담”을 요구했다. 정부가 나서서 노동자들에게 제 발로 걸어 나가거나 임금 삭감을 감수하라며 양보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김동연은 이미 지난해 12월, 구조조정 추진의 기본 틀로 “시장 중심” 원칙을 제시했다. “시장 주도 구조조정”은 박근혜 정부 내내 지겹도록 듣던 말 아니던가? 김동연은 재무적 관점의 부실 정리보다 “산업 혁신 지원”에 중점을 두겠다고 했지만, 이것도 박근혜 정부와의 차이는 못 된다.
박근혜 정부도 실천에서는 부실기업 죽이기로 나가지 않았다. 특히, 2016년 8월 이후에는 조선·해운업 ‘사양산업’에 관한 말도 거둬들였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누누히 지적했듯이, (자본의 집적과 집중으로) 거대해지고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 경향으로) 노쇠해진 자본주의의 딜레마 때문이다.
그러나 김동연이 “산업 경쟁력”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기업이 ‘회생’돼도 노동자는 ‘희생’되는 비극이 반복될 게 뻔하다. 시장 논리가 지속되는 한 “경쟁력”은 감원과 임금 삭감, 노동유연화와 생산성 증가를 뜻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보호를 위한 국유화
문재인 정부는 GM에 정상화 방안을 요구하는 것 말고 대안이 없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선, GM 정상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짚어야겠다. GM은 구조조정에 성공하고 한국 정부가 추가 지원에 나서면 신차를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방안이 될 수 없다.
신차 배정 자체가 일자리 감축을 전제로 한 것인 데다, 한국 정부가 지원금을 쏟아부어 GM을 붙잡고 신차 배정을 받아 봤자 약발이 얼마 못 갈 수 있다. GM은 수익성이 낮다며 언제든지 철수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 있다. 유럽에서 GM은 신차 모델 생산 일정을 남겨놓고도 일부 공장을 매각했고, 노동자들은 다시금 해고 위협에 직면했다.(이번 호 12면 기사 ‘‘양보 교섭’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가?’(김하영)를 보시오.)
둘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도 진실이 아니다. 정부는 GM 군산공장을 국유(기업)화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할 힘이 있다. 단지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 않을 뿐이다. 2000년대 중반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은 석유와 가스기업들의 국유화를 단행했고, 지금 영국 노동당 제레미 코빈 대표는 민영화된 기업들의 재국유화를 주장하고 있다.
세계화된 경제에서 한 나라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퍼뜨린 대표적인 거짓말의 하나다. 실제로 많은 정부들이 전면적인 불황을 막고자 경제에 개입했고 기업들에 보조금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노동운동은 문재인 정부에게 이제 그 돈을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 쓰라며 군산공장 국유(기업)화를 요구해야 한다.
이것은 전에 한국 정부가 종종 취했던 부실기업 ‘일시 국유화’ 조처(공적자금 투입이나 법정관리 후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매각)와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매각을 위한 임시 관리체제였을 뿐이고, 그 목적은 기업들의 수익성 보장을 위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이었다.
한계와 의미
물론 국유(기업)화는 만병통치약이 결코 아니다. 현재 공기업이나 민영화 이전의 국유 기업들이 어떻게 운영됐는지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한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공기업들은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위계적이고 관료적으로 조직되고 통제됐다.(이것은 자본주의 국가가 사회 변혁의 핵심 도구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는 국가 소유를 노동자 국가나 사회주의의 잣대로 보지 않는다. 노동자 통제(노동자 관리)가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노동자 통제는 지난 한 세기 동안 혁명적 격변기 때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 속에서 거듭 등장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가 유지되는 한 노동자 통제는 전진할 수 없었다. 한 작업장 사회주의는 물론 한 나라 사회주의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국유(기업)화 요구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국유(기업)화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GM 노동자들과 그 연관 기업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당장의 위험을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한국GM 군산공장 국유(기업)화로 일자리가 보호된다면, 기업 파산과 해고 위협에 직면한 다른 노동자들(가령 금호타이어나 두원정공, 성동조선)에게도 더 나은 대안이 있음을 보여 줄 수 있다.
기업 하나가 국유(기업)화 된다고 해서 정신 나간 시스템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장 지상주의에 타격을 가하고, 노동자들에게 싸울 자신감을 줄 수는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국제 경쟁력 논리를 따라야 하는지, 생산이 이윤 우선주의를 따라 이뤄져야 하는지 생각하기 시작할 수 있다. 국유(기업)화가 다른 종류의 경제에 대한 상(像)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공장 점거
문재인 정부와 기성 정당들은 국유(기업)화 대안을 아예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저항에 부딪히지 않는다면 말이다. 2008년 가을 대불황이 시작되고 공장 폐쇄 위험에 직면한 유럽과 미국 등지의 일부 노동자들은 (그리고 한국의 쌍용차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지키고자 공장 점거에 들어갔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한국GM 군산공장 노동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공장 점거가 단행된다면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불러일으킨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는 한편, 노동자들의 연대가 모이는 초점이 될 것이다. 그런 투쟁은 자본주의의 냉혹한 논리에 삶이 송두리째 망가질 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에게 생존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양보 후에도 매각과 감원으로 고통받고 있는 복스홀(영국 GM) 노동자들
한국GM은 군산공장 폐쇄, 비정규직 해고, 희망퇴직에다, 노동조건 악화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임·단협에서 인건비를 연간 3000억~4000억 원 절감하는 양보를 얻어 내려 한다.
‘평생 죽어라 일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원통하지만 일자리를 잃느니 차라리 조건 악화를 받아들이는 게 낫다고 노동자들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GM에 앞서 공장 폐쇄나 철수 위협을 겪으며 노동조건 양보를 택한 바 있는 다른 나라 GM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의 경험은 노동조건 양보가 결코 고통의 끝이 아님을 보여 준다. 영국 복스홀 엘즈미어포트 공장 노동자들은 한 사례다.
GM을 붙잡기 위한 양보 교섭
2012년 영국 최대 노조 유나이트(Unite)의 지도부는 GM의 유럽 일부 공장 폐쇄 위협에 직면해, GM을 붙잡기 위한 ‘양보 교섭’에 나섰다. GM이 복스홀 엘즈미어포트 공장에 신차(아스트라) 배정을 약속하는 대신 노동조합이 임금 동결, 각종 수당 삭감, 2교대에서 3교대로 전환 등을 수용한 것이다. 당시 언론들은 이를 “영국 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
그 뒤 복스홀 엘즈미어포트 공장 노동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노동조건 악화를 감내한 덕분에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GM은 복스홀 노동자들의 양보에 화답하지 않았다. 2017년 8월 GM은 복스홀 엘즈미어포트 공장을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푸조시트로엥그룹(PSA)에 매각했다. 복스홀을 인수한 PSA는 그해 10월 400여 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엘즈미어포트 공장 노동자의 4분의 1에 가까운 규모였다.
2012년 양보교섭에 나섰던 유나이트 지도부는 이번에도 대규모 인원 감축을 받아들였다. 그 3개월 뒤인 올해 1월에도 PSA는 250명 추가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2000명가량 일하던 엘즈미어포트 공장은 이제 1200명으로 줄어들게 됐다.
엘즈미어포트 공장은 2021년까지 아스트라를 생산할 예정이지만, 그 뒤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엘즈미어포트 공장의 새 주인이 된 PSA는 생산 비용이 프랑스보다 높다며 엘즈미어포트 공장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복스홀 노동자들은 얼마 안 가 더 잘려 나가거나, 생산 지속을 대가로 또 다른 양보를 강요받게 될 수 있다.

바닥을 향한 경쟁
PSA는 GM으로부터 복스홀(영국)과 함께 오펠(독일)도 인수했다. 그러면서 GM 못지않게 노동자들 ‘경쟁시키기’에 나섰다.
PSA는 생산하는 차량 모델들의 크기가 비슷해 영국·독일·프랑스 공장 어디에든 물량을 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고 있다. 물량을 배치받고 싶으면 더 적은 노동자가 더 많은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엘즈미어포트 공장의 비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PSA는 영국 복스홀 엘즈미어포트 노동자의 4분의 1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독일 금속노조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합의할 수 있었다(2017년 12월).
그 합의의 핵심은 독일 금속노조가 오펠 노동자들을 ‘자발적’으로 퇴직시키기로 한 PSA의 방침을 받아들인 것으로, 합의안에는 ‘조기 퇴직 지원 프로그램’이 포함됐다. 이제 독일에서도 ‘사오정’(사오십대에 정리해고 당한다는 뜻)이라는 말이 유행할지도 모른다.
항간에는 감원 규모가 4000~6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가 돈다. 얄궂게도 엘즈미어포트 공장과 마찬가지로 오펠 노동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것은 프랑스 자동차 기업이 영국과 독일 노동자들에게 가한 횡포가 아니었다. PSA는 복스홀과 오펠을 인수한 지 몇 개월 만인 올해 1월 프랑스 공장에서도 22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마크롱이 도입한 ‘쉬운 해고’ 제도는 PSA에 날개를 달아 줬다.
부메랑
복스홀 엘즈미어포트 공장 노동자들의 경험은 노동조건 양보로는 결코 일자리를 지킬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양보 교섭은 다른 나라 공장의 노동자 조건에 악영향을 미치고, 부메랑이 돼 돌아와 자신들의 조건을 재차 위협한다.
세계적 자동차기업들은 각국 자동차 노동자들의 임금을 비교하면서 생산을 이전할 수 있다고 위협해 노동조건을 하락시켜 왔다. 바닥을 향한 경쟁이다.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저항할 때만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