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세는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와 <비정규개악 ․ 로드맵 분쇄>를
단일한 투쟁으로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과 정권은 유보된 비정규직 개악안을 로드맵과 함께 9월에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파견제 확대를 핵심 축으로 하는 비정규직 개악안이 기실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겨냥하고 있는 것임에도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에게 절박한 투쟁 과제로 다가오지 않은 것이 그간의 상황이다.
그러나 로드맵의 경우는 누가 보더라도 그 타깃이 일차적으로 정규직 조직 노동자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 분명한 이상, 비정규직 개악안과 로드맵의 ‘동시 처리’가 일정에 올라온 하반기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을 내장하고 있다.
그 동안 비정규직 개악안 폐기투쟁이 소수 비정규직 주체들의 선도적인 투쟁으로 진행되었다면, 이제는 로드맵 분쇄투쟁의 흐름을 빠르게 형성시켜내는 것을 통해 대중투쟁으로 로드맵과 함께 ‘일괄 동시 돌파’를 기해야 할 조건 속에 놓여졌다.
알다시피 로드맵은 ▲‘사용자 대항권’을 강화하여 노조의 파업권을 봉쇄하고 ▲ 정리해고 요건을 대폭 완화하여 노동유연화를 완성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러한 로드맵을 막지 못한다면, 노동자의 생존권은 98년 정리해고제 도입 이상으로 벼랑으로 내몰릴 것이고, 특히 노동운동은 영국 대처 수상 하에서 노조가 무력화되고 대공장 조직노동자 운동이 해체되어 몇 십 년 동안 암흑기로 접어든 것과 다르지 않은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 동안 우리가 흔히 써 온 ‘퇴조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계급투쟁 지형이 질적으로 완전히 후퇴해버린, 예컨대 ‘투쟁’이란 단어를 잊어버릴 정도까지 갔던 7,80 년대 서구의 노동운동처럼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로드맵에 담긴 자본의 노림수는 가공할 만한 것이다.
따라서 하반기 로드맵 분쇄투쟁은 노동운동에 사활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론 그 만큼 격전장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계급운동 진영의 입장에서는 후퇴를 거듭해 온 계급투쟁 정세의 반전을 꾀할 승부처이기도 하다. 자본과 정권의 입장에서도 로드맵은 자본주의 세계화 속에서 격화되는 남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띄어놓은 일종의 승부수이기 때문에 결코 무르거나 대충 넘길 수 없는, 명운을 걸고 덤벼들고 있는 과제이다.
이렇게 볼 때 노자 간에 일대 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자본과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구도에 조응해 들어가면서 노사정 대화에 매달릴 것이 예견된다고 할 때 대중투쟁 동력이 이러한 합의주의 구도에 의해 억눌리지 않고 어떻게 분출될 수 있도록 할지가 우리에게 가장 큰 고민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자본과 정권도 격렬한 계급투쟁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이를 관철시키려 하기보다는 민주노총을 노사정위에 끌어들여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사회적 합의’의 외관을 씌어 관철시키려 할 것이다. 이는 그간 자본과 정권이 취해 온 계급투쟁 관리 전략으로 보나 최근까지 보여 온 행보로 볼 때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지점이다.
‘합의’의 내용은 로드맵의 몇 가지 조항들이 기만적으로 완화되는 외양을 취하면서 주요 핵심 내용들이 관철되고, 민주노총에게는 반대급부로 “중층적 교섭체계의 활성화”라는 이름 하에 산별 협약, 업종별 노사정협의체, 지역 다자간 협상구조, 사회공헌기금 등 각급 노조관료들의 자립화 과정을 완성시켜 줄 수 있는 제도, 기구들을 선사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며칠 전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노총 이석행 사무총장은 “대화 전술”로 비정규직 개악을 막았다고 자랑하면서 “교섭하고 쟁점화 시키면 로드맵도 승산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으로 볼 때 민주노총은 로드맵 문제도 사회적 합의주의를 안착시키는 계기로 삼고자 작정한 듯 하다.)
여기서 로드맵 공세와 사회적 합의주의 구도가 어떻게 자본의 대(對)노동 전략구도 속에서 하나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지가 드러난다. 이미 작년 하반기 이래 비정규직 개악안 폐기투쟁에서도 드러났듯이,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 기조를 분명히 하지 않고서는 노 ․ 사 ․ 정 사회적 합의주의 구도에 걸려 거듭 좌초되어 온 상황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 개악안 폐기투쟁>, 그리고 특히 <로드맵 분쇄투쟁>은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투쟁>과 별개의 투쟁일 수가 없다.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투쟁 없는 로드맵 분쇄투쟁이란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로드맵 분쇄투쟁은 산업 ․ 업종, 지역, 단사 등 각급 수준에서 협조주의적 노사관계를 구축해 들어가고 있는 사회적 합의주의와의 투쟁을 모든 수준에서 전면적으로 전개하지 않고서는 승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2. 기간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의 한계와 과제
기간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전노투를 구성하여 공동투쟁을 전개해 왔다. 전노투 활동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건 간에 전노투를 빼놓고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을 이야기할 수가 없을 정도로 전노투와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은 동일시되고 있다. 하반기 정세를 앞둔 지금, 어느 때보다도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 전선이 강화되어야 할 시점이라는 점에서 전노투 공동투쟁은 확대되어야 하며 동시에 집중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전노투를 통한 공동투쟁은 그 동안 성과도 있었지만, 많은 한계를 노정해 온 것도 사실이다. 공동투쟁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한계에 대한 명확한 평가와 이를 토대로 한 극복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극복방안은 현 국면에서 집중해야 할 투쟁 과제를 확인하고 투쟁의 기조와 방향을 분명히 하는 전술계획의 형태로까지 구체화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의 논의가 이러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하의 주장과 제안은 그러한 논의를 위한 발제이다.
다음은 그 동안 전노투 공동투쟁의 대표적인 한계로 거론된 지점들이다.
▲ 현장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문제
▲ 총파업 조직에서 드러난 ‘실력 부족’의 문제
▲ 비정규직 등 투쟁하는 단위들과의 결합이 잘 안 되고 있는 문제
1) <현장에서부터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전노투 공동투쟁의 한계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현장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 “현장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현장과의 결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상층 대응 중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전노투는 민주노총 상층회의 대응기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현장과의 결합 부족”이라는 한계를 인정하는 한편, 대의원대회 투쟁을 “상층 사업”이라고 비판하는 극단적인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하는 내부의 평가를 인용하겠다.
“-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교섭에 맞서는 투쟁은 전노투의 가장 큰 사업이 됐다. 전노투의 대의원대회의 투쟁을 둘러싸고 수많은 논란과 비판과 악선동이 제기됐다. 자본가언론과 관료들의 악선동을 제외하고 제기된 비판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대응은 현장과 결합하지 못한 상층 사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현장 내에서의 투쟁과 그 집중적인 표현인 대의원대회에서의 투쟁을 분리시키는 단순한 사고에서 비롯됐다.
- 전노투의 대의원대회 투쟁은 과거 노사정위를 통해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한 동지들과 비정규직 사업장, 선진 활동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1차 대대 무산 이후 제기된 온갖 악선동에도 불구하고 2차 대의원대회 투쟁에는 3백 명 이상의 노동자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투쟁의 선두에 섰다.
- 대의원대회 투쟁은 상층사업이 아니라 현장의 투쟁하는 동지들이 중심이 된 중앙 집중적 투쟁이다.
- 전노투의 가장 큰 약점은 현장과의 결합부족이다. 이는 관료들의 비아냥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노투 스스로도 인정하는 뼈아픈 한계다. 현재 전노투 상황실 내에는 결성초기의 우려처럼, 현장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현장과 결합력이 미약한 소수 정파 중심으로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실을 주도하고 있는 소수 정파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전노투의 현장과의 분리는 상황실이 의도적으로 상층 중심의 사업을 했거나 현장과의 분리를 조장한 결과가 아니라 각 지역위원회의 사실상 활동 정지, 전노투 참가조직의 실력과 역량의 한계 등에 그 원인이 있다. 이러한 객관적인 역량의 한계로 인해서 전노투는 사회적 합의주의가 단사에서 관철되는 문제에 대해 효과적인 투쟁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대투쟁을 비롯한 기간 전노투 차원의 공동투쟁이 가진 긍정성을 유지하면서 한편으로 어떻게 현장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의 흐름을 만들어낼 것인가가 과제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본의 로드맵 공세가 조성하는 긴박한 정세에서 현장의 전투적 활동가들이 관성과 패배주의를 떨쳐버리고 나서는 것이 급선무이다. 소수라도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자세로 지금부터 로드맵 분쇄․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을 위한 선전선동부터 활발히 펼쳐야 한다. “임단투 국면에서 어떻게 다른 사안을 가지고 투쟁하자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임단투로 1년 농사 아무리 잘해도 로드맵 태풍을 맞아버리면 몽땅 다 날라가는 엄중한 상황임을 직시해야 한다.
올해처럼 임단투가 전국적 쟁점과 전선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해도 없다. 임단투와 하반기 투쟁의 연결고리가 철저히 실종되어 있는 것이다. 임단투 국면에서 로드맵 분쇄를 위한 대조합원 선전전을 극대화하고 현장 동력을 이끌어내 하반기 투쟁으로 이어갈 연결고리를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을 거쳐 임단투 마무리 후 단사 현장별로 <로드맵 분쇄․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 현장 공동투쟁위원회(가칭)>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지역별 연대투쟁체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단사에서 <로드맵 분쇄 현장공투위> 구성이 어려운 경우 지역 공투위를 먼저 구성해서 현장 공투위 구성으로 들어가는 순서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형태와 순서가 어떠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대공장 노조관료들의 사회적 합의주의를 비롯한 일체의 노사협조 행보를 폭로, 타격하고 이에 맞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할 세력이 결집하는 것이다. 관료들도 로드맵에는 일단 반대할 것이며, 나아가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서도 말로는 반대하는 시늉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자 이상욱 집행부를 비롯한 자동차 완성사 노조들의 ‘사회공헌기금’이나 ‘자동차노사협의체’ 추진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 합의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실제로는 단사판 ․ 업종판 사회적 합의주의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공장 관료들이 총연맹 차원의 사회적 교섭 추진이나 노사정위 복귀에 실천으로 반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총연맹이 직권추진을 불사하면서까지 사회적 교섭을 강행할 수 있는 자신감의 배경이다. 대공장 노조관료들이 로드맵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그들을 로드맵 분쇄투쟁 전선에 함께 할 수 있을 세력으로 보는 것은 로드맵과 사회적 합의주의의 연관성을 보지 못하는 지극히 단선적인 시각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추구하는 단사판 ․ 업종판 사회적 합의주의는 로드맵 분쇄투쟁과 양립할 수 없으며, 로드맵 국면에서 로드맵 분쇄투쟁의 현장 동력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부터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이 절실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로드맵 분쇄 현장공투위>는 총연맹에 의한 전국 차원의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단사 집행부 차원의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투쟁을 전면적으로 펼쳐야 한다. 전노투가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안)의 반노동자성을 폭로하고 쟁점화 하여 대대에서 단상점거를 불사하고 저지투쟁을 벌였듯이 현장공투위 또한 단사에서 이러한 활동과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공식 제도권의 ‘민주적 절차’가 계급의 사활적 이해에 우선할 수 없다. 전노투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라는 공인된 노동조합 기구 테두리 안에서 기구의 의사진행 절차에 갇힌 채 투쟁하려고만 했다면 사회적 교섭 저지투쟁은 가능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수호 집행부는 일찌감치 노사정위에 복귀하여 거침없이 ‘사회적 합의’에 조인했을 지도 모른다. 전노투가 그렇듯이 어차피 현장공투위 또한 비공인 단위일 수밖에 없다면, 필요할 경우 언제든 공식 제도권 테두리를 벗어나는 비공인 투쟁을 감행할 수 있어야 한다.
전노투 공동투쟁의 한계로 거론된 ‘현장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의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문제’나 ‘현장과의 결합 부족’은 전투적 현장활동가들의 이러한 투쟁을 통해서만 오직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만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투쟁은 대의원대회라는 협소한 공간을 벗어나 대중투쟁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현장 공투체가 전노투와 어떤 관계 속에서 활동할 것이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조직형식적으로, 소속관계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의 초점을 벗어나는 것이다. 어떠한 조직형식적 관계를 맺을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전노투 공동투쟁의 긍정성을 이어가고 이를 현장으로까지 확대시키는 것, 그리고 이와 함께 이러한 단사별, 지역별 공동투쟁이 역으로 담보해야 할 전국성을 어떻게 확보해내느냐이다. 현장공투위를 구성하고 그 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현장활동가 동지들의 주도성 발휘에 달렸다. 그리고 이 부분은 조직적으로 전노투와 무관하게, 기존 전노투 공동투쟁의 범주를 벗어나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노투는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고 해소해도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단위 현장공투위의 투쟁들을 연결, 조정하고, 이 투쟁들이 전국적 시야를 잃지 않도록 부단히 전국적 쟁점을 선도하는 기능, 나아가 필요할 시 민주노총 대대 투쟁과 같은 중앙집중 투쟁을 조직하는 기능은 어떤 식으로든 충족되어야 한다. 전노투가 간판을 달리 하든, 또는 해소하고 다른 형태의 공투체를 구성하든 중요한 것은 간판과 조직형태가 아니라 이러한 기능들이다. 현 시점에서 이러한 기능들을 더 잘 할 수 있는 기존의 단위를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이후 그러한 단위를 만들 수 있을 때까지는 전노투가 유지되어서 이러한 기능을 해 주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현장공투위들의 전국적 대표자회의가 건설되어야 한다. 전노투는 이러한 전국 현장공투위 대표자회의가 빠르게 건설될 수 있도록 촉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전노투가 그래서 언젠가 해소되어야 한다면, 이러한 소임을 다 한 뒤 전국 현장공투위 대표자회의가 로드맵 분쇄 ․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투쟁을 거쳐서 전노투의 한계를 확실히 넘어서는 새로운 전국적 연대체로 전환할 때가 아닌가 한다. 더 이상의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는 여기서 가능하지 않을 것이고, 투쟁의 진전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보면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2) 총파업 조직화에서 드러난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세력들의 ‘실력 부족’?
비정규 개악안 저지투쟁도 그러했지만, 비정규 개악안과 로드맵을 일괄처리하려는 자본의 기도에 맞서 이 둘을 일괄 폐기하는 투쟁은 더더욱 총파업의 무기를 요구할 것이다. 로드맵의 수정이나 부분적 완화가 아니라 완전 폐기를 목표로 하고 대중투쟁으로 자본의 로드맵 공세를 돌파하고자 한다면 총파업 말고는 지금으로선 다른 무기를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노사정 사회적 교섭 테이블에서의 압력용으로 사용하는 ‘총파업 결의’가 아니라 실제 현장으로부터 총파업을 조직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짜리의 위력 없는 형식적인 총파업이 아니라 공세적이고 실질적인 총파업이어야 한다고 할 때 기간의 비정규 개악안 투쟁 과정에서 독자적인 총파업 조직의 어려움을 상기한다면 결코 낙관적일 수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노투는 두 차례의 현장활동가대회를 통해 총파업 조직을 결의하였고, 전노투 지역위원회를 통한 총파업 선봉대 구성을 시도하여 이러한 결의를 실천에 옮기고자 했다. 대의원대회 단상점거 투쟁 가운데서도 사회적 교섭 폐기뿐만 아니라 총파업 조직을 호소하여 투쟁하는 동지들의 결의를 끌어냈다. 또한 비정규직 투쟁을 비롯하여 해당 시기에 전개되고 있는 투쟁들에 연대하는 것과 함께 전국순회투쟁을 통해 ‘총파업 조직을 위한 투쟁사업장 연석회의’ 구성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결의와 시도들이 힘 있게 실행되지 못하고 ‘실력 부족’만 확인한 채 실패로 끝났지만, 하반기 로드맵 국면에서 총파업 문제는 또 다시 제기될 것이다. 이제는 ‘양치기 소년’이라는 비판 따위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민주노총은 언제든 철회할 수 있는 ‘총파업 결의’를 교섭 압박용으로 또 다시 들고 나올 것이다. ‘양치기 소년’에 수 없이 당하고 그 기만성을 빤히 알면서도 냉소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우리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 세력들은 ‘총파업 결의’를 실제로 실행에 옮기도록 압박하고 강제하는 행동들을 또 다시 조직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못 이겨서건 관료 지위를 유지, 강화하기 위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건 하루짜리 형식적인 총파업 같은 것은 언제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동지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이런 종류의 총파업은 “관료들의 힘만 2배로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쉽다. 실제로 자본과 정권도 코웃음 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총파업이 관료들의 힘만 강화할 것이라고 해서 우리들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 세력들이 현 시기 실질적인 총파업은 가능하지 않다, 현 시기 아래로부터 총파업의 현실적 기초가 없다고 단정 내릴 수 있을까(“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는 대중투쟁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주장해 온 우리들이 현장에 동력 없다는 관료들의 핑계를 결과적으로 정당화시켜주는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리하여 로드맵 국면에서 총파업에 기권하고 다른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인가? 다른 방향이 있을 수가 있다고 본다. 주요한 예로서, 비정규직 투쟁 등 투쟁하는 단위들과의 연대에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가져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다른 방향들 또한 총파업 국면에서 총파업에 기권하지 않고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기본 방향을 분명히 세우는 속에서만 그 안에서 현실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세력들이 실력이 안 된다고 총파업 국면에서 총파업에 기권하고 ‘실력에 맞는’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전선의 대중적 토대를 획득하는 것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그 다른 방향에 대해서는 뒤에서 이야기해 보자. 여기서는 먼저 총파업 국면에서 총파업에 기권하는 입장을 취하고서는 다른 어떤 제안도 정당성을 얻기가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한 위에서, 기권하지 않고 총파업을 조직하고자 하는 과정 자체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우선 ‘총파업’ 성사에 대한 강박을 떨쳐버려야 한다. 실질적인 총파업을 결국 못 만들어내는 것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총파업을 결의하고 약속한 관료들을 압박, 강제하는 행동들을 조직하고, 한편으론 독자적으로 총파업을 조직하고 나아가 독자적인 총파업 구심을 세우기 위한 투쟁과 사업들을 배치하는 그러한 과정이 중요하다. 총파업 국면에서 이러한 투쟁들을 활발히 전개한다면 설사 실질적인 총파업을 못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관료들의 형식적인 총파업의 기만성을 실천적으로 폭로하는 데서나, 현장의 현안 문제들을 가지고 대중들을 투쟁으로 조직하는 데서나 총파업에 기권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기권해버리면 어떤 다른 방향을 모색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관료들의 기만적인 총파업 놀음을 그저 냉소적으로 지켜만 봐야 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이런 노력과 시도들을 과감히 함으로써만 마침내 관료들의 기만적인 총파업 놀음을 실천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들과 주체들이 형성, 단련될 수 있을 것이다.
총파업 성사 못 시키면 다 끝이다라는 식의 강박을 가지지만 않는다면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과정 자체는 계급투쟁의 전진을 위한 비옥한 토양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말자. 어차피 실질적인 총파업을 조직할 수 있는 ‘실력’ 문제로 말하면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세력들이나 어디나 매 한가지 아닌가. 누가 지금 자신 있게 ‘우리다!’라고 나설 수 있는 세력이 있는가.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세력들이여! ‘실력 부족’을 탓하지 말자! 냉소를 떨쳐버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3)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은 비정규직 등 투쟁하는 단위들과의 결합을 통해
대중투쟁으로 확대 발전되어야 한다
그러면 하반기 로드맵 국면에서 또 다시 예상되는 관료들의 기만적인 총파업 놀음을 극복하고 어떻게 실질적인 총파업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보자.
이 문제는 한 축으로 위 1)절에서 제안한 ‘현장에서 로드맵 분쇄․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 공동투쟁’을 어떻게 잘 성사시키고 강화시킬 것인가에 많은 부분 달려 있다. 현장에서부터 투쟁이 결의되지 않는 한 형식적인 총파업을 극복할 수 있는 다른 현실적 기초는 없다. 현재 현장에서는 ‘양치기 소년’ 민주노총이(중앙위든 대대든) 총파업을 결의하면 당연히 믿지를 않는 분위기다. 현장활동가들도 대부분 냉소적인 태도를 취한다. 아무도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이러한 정서와 태도는 그간의 과정 속에서 당연히 근거가 없지 않지만, 투쟁에 도움이 안 된다. 이러한 분위기를 불식하고 현장활동가들 사이에서 먼저 투쟁의 결의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하반기 엄중한 정세와 투쟁과제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교육, 선전이 활동가들 사이에서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로드맵 분쇄 ․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 현장공투위> 구성을 다시 한번 화두로 던진다.
관료들의 기만적인 총파업 놀음을 극복하고 실질적인 총파업을 만들어가는 데서 반드시 필요한 다른 한 축은 비정규직 등 투쟁하는 단위들과의 긴밀한 결합이다. 전노투는 이러한 투쟁하는 단위들과의 결합을, 투쟁사업장 동지들과의 연대를 이뤄내는 데 그 동안 실패해 왔다.
전노투가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에 주력하는 동안 전비연 열우당 점거투쟁과 국회 크레인 고공농성투쟁 같은 선도적인 투쟁뿐만 아니라 현자 비정규직 불파투쟁, 청주 하이닉스 투쟁, 울산 건설플랜트 투쟁, 구미 코오롱과 금강화섬 투쟁 등 현장 대중들의 투쟁이 전개되어 왔다. 이 투쟁들은 그 동안 전국전선을 쳐주었던 대공장 정규직 투쟁이 현재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를 대신해서 전국적으로 투쟁의 흐름을 이어주고 있는 주요한 투쟁들이다. 이 투쟁들이 연대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음에도 전노투는 집회 참가 수준 이상으로 연대투쟁을 펼쳐 주지 못했다.
이 투쟁들은 물론 제각기 자신의 절박한 요구들과 현안들을 가지고 싸울 뿐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를 내걸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 투쟁들은 민주노총 지도부를 비롯한 관료들의 사회적 합의주의가 왜 기만적이고 반노동자적인지를 몸으로 폭로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합의주의의 기만성과 반노동자성으로 인해 타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것도 이 투쟁들이다.
이 투쟁들이 확산되지 못하고 오히려 고립, 각개격파 되거나 기만적으로 정리되어버린 근본 배경은 관료들의 사회적 대화 국면 조성 등 사회적 합의주의 구도에 있다. 건설플랜트 투쟁 정리 과정에서처럼 관료들은 심지어 사회적 합의주의 구도를 강화시키는 계기로 삼기 까지 한다. 따라서 이 투쟁들이 고립을 탈피하고 확산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투쟁의 흐름과 결합되도록 해야 함에도 전노투는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전선에 이들을 합류시키는 데 실패해 왔다.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이 이러한 투쟁들과 결합함으로써 대중적 토대를 가진 투쟁으로 발전하는 데 실패해 온 것이다.
이것은 전노투 공동투쟁이 대의원대회 투쟁 같은 중앙집중 투쟁 뿐만 아니라 지역별 연대투쟁으로까지 확대되지 못한 데에 있다. 로드맵 분쇄․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 현장공투위나 지역공투위가 구성되면 이 투쟁사업장들을 중심으로 지역 차원의 연대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을 또 다른 자기 임무로 가져가야 할 것이다. 지난 충북지역본부 차원의 지역 총파업 조직 과정에서 보듯이, 투쟁사업장을 중심으로 이러한 지역별 연대투쟁이 활발히 펼쳐질 때에만 형식적인 총파업을 넘어 실질적인 총파업을, 위로부터 관료적으로 통제되는 총파업을 넘어 아래로부터 투쟁동력이 솟구쳐 나오는 총파업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러한 투쟁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별 연대투쟁을 전국적 차원에서 로드맵 분쇄․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 투쟁으로 모아내는 작업을 통해 총파업투쟁의 실질적 구심을 세워야 한다. 전국 차원의 투쟁사업장 연석회의와 전국 현장공투위 대표자회의(또는‘로드맵 분쇄 전국 공투본’)를 소집할 수 있는 수준까지 투쟁을 모아낼 수 있다면, 관료들의 기만적인 총파업 놀음을 젖히고 실질적인 투쟁 지도부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로드맵 국면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총파업 문제와 관련하여 투쟁의 더 구체적인 상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자제하고 다음 한 가지 전제만 분명히 하고 논의를 마무리하자.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은 비정규직 등 투쟁하는 단위들과의 긴밀한 결합을 통해, 그리고 투쟁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 및 전국 차원의 연대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을 통해 대중적 토대를 가진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많이 거론되고 있는 전노투 - 전비연 연대 또한 이러한 투쟁하는 비정규직 단위들과 긴밀히 결합된 대중적인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투쟁으로 뒷받침 될 때 현상을 타개해 나갈 혁신의 연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