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hanphil.or.kr/bbs/data/gallery/Cups.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hanphil.or.kr/bbs/data/young/brod.js></script> 법적 근거 없는 민주화운동 기여도(민주화 운동 관련성)철폐를 위한 유가족 농성단 호소의 글
1999년 12월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명보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하여 2001년 11월 27일부터(제32차 본회의 의결) 현재까지 “국무총리소속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이하 심의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국가폭력으로부터 당한 여러 유형별로 그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의 정도를 심의하고 있습니다.
민주화운동과정에서 당한 상해, 해고, 구금 등에 대한 보상. 원직복직의 방법으로 심의가 진행되고 집행되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위 법안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민주발전의 다양한 폭압의 상황에 맞서 죽음이라는 모습으로 산화해 간 수 많은 민주화운동 사망자들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해방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하신 민주화운동 사망자들은 400여명이 넘고 이 사망자들 중, 180여명정도가 심의위에 신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심의위는 180여 명 중 90명 정도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이중에서 24명의 민주화운동 사망자들에게는 명보법 조항 어디에도 없는 ‘민주화운동 기여도 또는 민주화운동 관련성’이란 표현을 하며 죽어간 민주화운동 사망자들에게 상해자들에게나 주어지는 명보법에 대한 퍼센트(%)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명보법 제2조 제2호 가목에 민주화운동관련 사망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한 자 중 위원회에서 심의, 결정된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명보법 제6조에 ‘관련자와 그 유족에 대하여는 관련자 희생의 정도에 따라 보상하되, 그 생활 정도를 고려하여 보상의 정도를 달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상이자의 상해정도(예: 장해등급)에 따라 보상의 정도를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결코 사망에 대해서는 그 등급을 매길 수 없음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명보법 어디에도 사망에 관한 정도 내지 등급을 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심의위는 위원들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민주화운동 기여도와 민주화운동 관련성’이란 용어를 심사숙고(?)하여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떤 법률적 근거에 의해 만들어 낸 것인지, 죽은자를 어떻게 퍼센트로 적용할 수 있었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입니다.
심의위는 분명히 명심하고 상기해야할 부분을 망각한 것입니다. 그것은 망자가 어떤 일반적인 사고에 의해 사망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국가폭력의 여러 형태로부터 야기되어 사망한 민주화운동 사망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열망하며 산화해 가신 민주화운동 사망자들의 구국의 정신을 심의위는 심대하게 왜곡하고 폄하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법률적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 명확하게 자료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심의위는 스스로가 명백한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의위는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1999년 12월 통과된 명보법대로만 사견과 편견을 없애고 심의했다면 무슨 문제가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지금 이곳 연합뉴스빌딩 11, 12층에 있는 심의위 한켠에서 140일이 넘도록 내 자식, 내 형제의 죽음을 몇 조각으로 쪼개놓고 있는 현실에 너무나도 분하고 원통한 심정으로 민주화운동 기여도 폐지를 위해 농성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 자식도 민주화 된 세상에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죽어간 것에 대해서 진정한 명예회복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이제는 내 자식, 형제가 다리 쭉 펴고 누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 심의위의 탁상공론에 의해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것이 너무 한스럽습니다.
우리 농성단은 내 자식의 죽음을 조각내고 있는 민주화운동 기여도가 폐지될 때까지 무기한으로 투쟁, 농성할 것입니다.
누가 책임질 수 있습니까.
노무현 대통령님. 잘못된 민주화운동 기여도를 폐지하십시요.
이해찬 국무총리님. 사망자에 대한 잘못된 민주화운동 기여도를 폐지하십시요.
심의위의 많은 직원들이 공무원이라고 합니다.
행자부 장관님. 행자부 공무원의 수장으로서 잘못된 민주화운동 기여도를 폐지하십시요.
내 자식을 두 번 죽이지 마십시요.
우리 농성단은 원천적으로 24명의 ‘민주화운동 기여도 또는 민주화운동 관련성’ 적용에 대한 폐지와 미처 심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모든 민주화운동 사망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심의진행과 보상집행을 강력히 호소합니다.
동시대를 살아온 심의위원들 또한 보다 진정어린 민주적 삶을 지향하면서 진정한 심사숙고를 하여 너무나도 자명한 민주화운동 사망자들의 심의에 대해 결코 임시방편으로 ‘민주화운동 기여도’라는 대책 없고 희한한 대안을 폐기하고 민주화운동 사망자들에 대한 완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매진할 것을 호소합니다.
우리는 완전한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과 보상에 대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하며 보다 많은 제 단체들과 연대하여 잘못된 것에 대해 맞서 나갈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뜻이 아니라, 먼저 간 우리 민주화운동 사망자들의 더 없는 소망이라 확신합니다.
법조항 어디에도 근거 없는 민주화운동 기여도를 폐지하고 심의 기각된 민주화운동 사망자들의 완전한 명예회복을 위한 심의를 전면 재개하라.
민주화운동 사망자의 유가족 농성단은 자식들의 민주화운동 기여도 폐지와 명예회복을 이루는 날까지 이 자리(농성장)를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망자들의 뜻을 끝까지 관철할 것입니다.
2005년 8월 23일
법적 근거 없는 민주화운동 기여도 폐지와
완전한 명예회복을 바라는 농성단
◇심의위원회 민주화운동 기여도 판정 현황◇
▷민주화운동 기여도 적용의 경과
○질병 후 사망 등 사망(상이) 인과관계와 민주화운동의 상관성이 명백하게 입증되기 어려운 경우, 관련자의 권리구제 및 민주화운동관련자 확대의 취지하, ‘민주화운동관련성(기여도)’를 적용하여 인정하기로 결정
○2001. 11. 27부터 2005. 2.14까지 약 3년여 기간 심의를 통해 총24건(총 사망인정자 88명의 27%)이 ‘민주화운동 기여도’ 인정 받음
○‘민주화운동 기여도’ 관련 표현변화
-2001. 11. 27~2004. 1. 13까지(이상희~권희정) “민주화운동 기여도” 표현 사용
-2004. 2. 17~ 2005. 1. 10(오범근~우종원) “민주화운동관련성” 표현 사용
○내역 - 괄호(%)는 민주화운동 기여도 보상 퍼센트와 심의 의결 일자입니다.
<학생 민주화운동 사망자>
노수석 민주화 운동 사망자(60%-2003. 9. 9. 의결)
(96.3.29/ 21세) 연세대생으로 ‘김영삼정권 대선자금공개투쟁’ 중 경찰의 토끼몰이식 시위진압으로 살해됨(심근경색) 1996 사망
류재을 민주화 운동 사망자(40%-2004. 1. 6. 의결)
(97.3.20/ 20세) 조선대생으로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운명(심근경색) 1997 사망
권희정 민주화 운동 사망자 (50%-2004. 1. 13. 의결)
(96.4.7/ 23세) 성신여대생으로 학원자주화 단식투쟁 후 후유증(심근염[추정])으로 운명 1996 사망
조정식 민주화 운동 사망자(70%-2004. 3. 23. 의결)
(89.5.24/ 26세) 반제동맹사건으로 복역 후 영전기계에 입사하여 노동운동 중 산재로 운명 1989 사망
장재완 민주화 운동 사망자(60%-2004. 3. 23. 의결)
(87.3.27/ 23세) 부산대생으로 방위병 근무 중 중요문건이 보안대에 넘겨지자 조직보위를 위해 자결 1987 사망
김용권 민주화 운동 사망자(45%-2004. 10. 11. 의결)
(87.2.20/24세) 서울대생으로 군입대 후 프락치 행위를 강요받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 1987 사망
우종원 민주화 운동 사망자(75%-2005. 1. 10. 의결)
(85.10.11/ 23세) 서울대 운동권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던 그는 민추위 관련으로 수배를 받아오다 경부선 철로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함 1985 사망
이상희 민주화 운동 사망자(10%-2001. 11. 27. 의결)
경원대생으로 90. 내각제 반대 등 관련 시위로 수감 고문 정신병 심화. 96. 정신분열증 투신자살, 이길상열사 동생. 1996 사망
정법영 민주화 운동 사망자(20%-2004. 4. 20. 의결)
(78.7.8/ 18세) 청주신학대생으로 부친(정진동목사) 민주화운동 돕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함(음독) 1978 사망
심광보 민주화 운동 사망자(80%-2004. 3. 30. 의결)
(90.9.8/ 19세) 충주고생으로 “전교조여, 참교육의 함성을!”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 1990 사망
김수경 민주화 운동 사망자(60%-2004. 3. 16. 의결)
(90.6.5/ 18세) 경화여고생으로 전교조 가입교사에 대한 징계반대 활동을 하다 투신 1990 사망
김기훈 민주화 운동 사망자(60%-2004. 6. 1. 의결)
(90.9.15/ 24세) 서원대 총학생회 활동으로 몸을 돌보지 않다 병악화(전립선암)로 운명 1990 사망
박동학 민주화 운동 사망자(60%-2004. 2. 24. 의결)
(96.5.8/ 24세) 대구공전학생 학생자치권 보장 요구 등 학생과장이 불을 붙여 운명 1996 사망
박인기 민주화 운동 사망자(10%-2003. 8. 12. 의결)
강원대생으로 전두환 반대시위로 수감 중 발병(신장암종) 3년후 1990 사망
이길상 민주화 운동 사망자(10%-2002. 6. 12. 의결)
경희대생으로 82경 고문으로 정신분열증발병 98 투신사망
김학수 민주화 운동 사망자(10%-2001. 12. 11. 의결)
조선대생으로 민자당 반대집회 참가 중 갑자기 쓰러져 사망(급성B형 간염) 1990 사망
<노동열사>
이대건 민주화 운동 사망자(60%-2004. 3. 30. 의결)
(88.1.8/ 33세) 우성택시 노동자로 사업주의 단체협약 위반에 항의하여 분신 1988 사망
오범근 민주화 운동 사망자(70%-2004. 2. 17. 의결)
(88.3.10/ 37세) 대원전기 노동자 파업농성을 지지 항의위해 음독 1988 사망
박진석 민주화 운동 사망자(20%-2004. 6. 29. 의결)
(89.6.4/ 20세) 대우조선 노동자로 회사측에 노조 탄압에 항의 분신 1989 사망
이상모 민주화 운동 사망자(20%-2004. 3. 30. 의결)
(89.5.29/ 23세) 대우조선 노동자로 박진석 열사가 분신한 날 ‘민주노조 사수’를 외치며 분신 1989 사망
원태조 민주화 운동 사망자(90%-2004. 6. 29. 의결)
(90.9.18/ 37세) 금강공업 노조 간부로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여 분신 1990 사망
박성호 민주화 운동 사망자(90%-2004. 6. 15. 의결)
(90.9.11/ 29세) 금강공업 노조 간부로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여 분신 1990 사망
신용길 민주화 운동 사망자(10%-2004. 3. 23. 의결)
(91.3.9/ 35세) 부산 구덕교 교사로 참교육을 위해 평생을 바침. 위암으로 1991 사망
조민기 민주화 운동 사망자(10%-2002. 7. 10. 의결)
동아방송 기자 해직, 해직 1년여 후 스트레스성 신부전증으로 1977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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