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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사태’는 ‘개인비리’ 아니다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 배임수재 사건은 노동자에게는 더할 수 없는 충격을 던졌고,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아니할말로 한국노총도 아니고 민주노총에서 이런 벌어졌으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더욱이 강승규 씨 본인이 여러 공식 회의석상에서 ‘아무 문제없으니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까지 했으니 다들 ‘그러면 그렇지. 설마 그럴 리가 있나’ 했었다. 그러나 며칠도 지나지 않아 강 씨는 검찰에 긴급체포 됐다. 지금 이 사건의 파장은 길고도 깊다.
노동운동 도덕성, 자주성에 치명타
첫째, 노동운동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다. 강승규 씨가 누군가.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었다. 위원장 유고시 직무를 대행할 위치에 있는 핵심지도자다. 더욱이 4기 집행부 출범 이후 그가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는 건 자타가 공인했던 사실이다.
뿐만이 아니다. 그는 조직혁신사업을 진두지휘해온 사람이다. 조직혁신위원장으로서 혁신안 입안을 주도한 뒤 기관지 인터뷰에서 “지도부를 믿고 함께 혁신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혁신안에는 ‘비리엄단, 투명성강화를 위한 혁신안\'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 사람이 비리를 저지른 것이다. 참담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둘째, 노동운동의 생명이라 할 ‘자주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그가 뇌물을 받은 상대는 택시사업조합 대표다. 교섭의 상대이자 대립관계에 있는 사용자 대표다. 다시 말해 택시노동자의 이해를 돈을 받고 팔아넘긴 것이다. 전투를 앞두고 적장한테 “이번 전투에서 잘 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
“당신도 돈 받아 먹었소?”
문제는 강 씨가 민주노총의 핵심지도부였다는 점에서 단순히 개인사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건 직후 보수언론이 ‘비리노총’이라고 낙인을 찍은 것이나, 많은 조합원들이 친지들한테 “당신도 혹시 돈 받지 않았느냐?”는 곤혹스런 질타를 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 흐려놓은 격이니 민주노총과 다른 집행부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도 조직 차원에서 마땅히 취해야 할 조치가 있는 법이다.
핵심지도부가 연루된 만큼 같은 집행부로서 분명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사태의 파장을 그나마 최소화하는 길이다. 그것이 상식이다. 그것이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이다. 민주노총은 이 사건 전에도 두 차례의 조직적 위기를 맞은 바 있다. 노사정위 정리해고 합의사건과 발전투쟁을 둘러싼 총파업 철회(4.2)사건이 그것이다. 이 두 사건에서 민주노총은 부적절한 합의를 도출했던 교섭책임자를 문책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도부가 총사퇴했다. 무엇보다 책임자를 문책하는 것만으로는 위기를 수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잘못을 개인(들)이 저질렀더라도 조합원과 국민의 비난은 조직을 향하기 때문이다.
상식도, 전통도 무시한 채 “사퇴불가”
그렇다면 ‘강승규 사태’는 어떤가. 물론 과거 두 사건과 성격이 다르다. 그리고 과거사건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과거사건이 전략․전술상의 오류(합의와 관련해 검은 거래가 있었던 게 아니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안이한 인식’, ‘투쟁마무리 시점 선택’, ‘주체역량 타산’ 등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라는 점에서)였다면, 이번 사건은 도덕성․자주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론이나 전략․전술에 밝지 못하더라도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도덕성과 자주성을 상실하면 지도력 자체가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수호 집행부는 어떻게 했던가.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원론적 태도만을 내놓은 채 진퇴문제를 중앙집행위에 넘겼다. 이는 한 마디로 비상식이다. 집행부가 먼저 사퇴 의사를 밝히고 그에 따른 대책을 논의했어야 한다. 이수호 집행부는 심지어 상당수 중집위원들이 즉각 사퇴를 주장했음에도 갑론을박을 지켜보다 결국 일방적으로 사퇴불가를 선언했다.
기호2번 진영도 “개인비리” 되풀이
그 명분은 ‘하반기투쟁을 책임 있게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비리사건의 한 당사자인 집행부가 스스로 ‘사퇴가 능사가 아니다’는 태도를 보인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런 ‘대책’으로는 결코 위기를 수습할 수 없었다. 또한 주관적 희망과 달리 ‘하반기투쟁’도 수행할 수 없었다. 지도력의 근간이 무너진 지도부를 믿고 투쟁에 나설 조합원이 얼마나 되겠는가. 투쟁은 그만 두고 이 비상식적 행보 때문에 이들이 머뭇거린 10여일 동안, 사무총국 간부들이 이에 항의해 집단사표를 내고, 현장의 분노가 들끓지 않았던가.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조직이 신뢰를 잃었을 때는 먼저 신뢰를 회복하고, 다음을 도모해야 한다.
그런데 우려를 자아내는 일이 있다. ‘4기 집행부를 계승’을 주요기조로 이번 선거에 나선 조준호 후보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강승규 사태를 개인비리로 규정했다. 조 후보는 이 인터뷰에서 이수호 집행부의 사퇴 결정이 타당했다고 하면서도, “개인비리가 터질 때마다 조직이 감수하면 운동이 질곡된다”는 모호한 인식을 보였다. 나아가 “문제가 터졌을 때 지도부를 흔들고 하는 것은 (정권과 자본의) 공세에…”라고 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이수호 ‘격려사’-이석행 선대본부장
하긴 4기 집행부를 계승하겠다는 조 후보에게 이 문제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기호2번 선대본 발대식에는 들끓는 현장여론에 밀려, 그것도 ‘우리는 잘못이 없지만 진짜엄마의 심정으로 조직을 살리려 한다’며 사퇴한 이수호 전 위원장이 참석해 격려사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역시 같은 처지인 이석행 전 총장은 2번 선대본의 공동선대본부장으로 발표됐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애초 ‘4기 집행부 명예회복’을 내세워 이번 선거에 나서려다 물러섰다고 한다. 명예회복이라니. 4기 집행부에 회복할 어떤 명예가 남아 있단 말인가. 그렇게 떳떳했다면 애시당초 사퇴는 왜 했는가. 그 비상식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