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권영화제를 거쳐간 사람들의 회고작 릴레이 인터뷰 ①②
① 인권운동사랑방 김정아 상임 활동가의 추천작 - 아나의 아이들 (김정아 씨는 96년 1회 인권영화제부터 지난 10년 동안 인권영화제 기획자로 활동해왔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며, 10회 인권영화제 고문! 및 ‘올해의 인권영화상’ 심사위원입니다.)
기자가 쓴 리뷰
로시피나 갈릴리 출신 유대인이며 이스라엘인인 아나는 팔레스타인 남자와 결혼 해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운동을 벌인다. 스웨덴 의회로부터 ‘대안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한 아나는 상금으로 받은 5만 달러로 팔레스타인 예닌지역 난민촌 중심에 극장을 지어, 연극인 출신 아들(감독)과 함께 난민촌 아이들에게 그림과 연극을 가르친다. 이스라엘 군대의 포격으로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아이들은 무너진 집더미에 앉아 분노나 슬픔의 감정을 표출하는 일 조차 잃어버린 채 그저 멍한 표정이다. 진짜 비극은, 슬픔으로든 분노로든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여유조차 잃어버린 데서 온다.
아나는 난민촌의 아이들에게 그림이나 연극을 통해서 응어리진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라고 가르친다. 폭격과 계속되는 죽음의 행렬 속에서 표정을 잃어버렸던 아이들은 연극을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뒤돌아본다. 그들은 말한다. 무대에 서면 꼭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는 기분이라고. 연극을 통해 사람들에게 나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가 삶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카메라는 연극학교의 아이들이 10여 년 후 자살테러나 총격전으로 죽은 이후의 삶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난민촌 아이들의 전사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그들의 생전의 삶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팔레스타인의 로미오가 되고 싶다던 아시라프는 총격전으로 사망하고, 연극학교의 코메디언이라고 불릴 만큼 유쾌한 아이였던 요제프는 자신의 품에서 죽어간 소녀에 대한 충격으로 인해 자살테러를 감행하며, 끝까지 저항하다 이스라엘군에 사살당한 알리까지. 어쩌면 이들은 어린시절 연극학교의 무대위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다운 표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저 자신들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무대위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삶의 모습들에 대해 사람들이 보아주고 공감해 주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삶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왜 우리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l! t;span style="font-family:바탕; font-size:9pt; color:black; letter-spacing:0pt; text-align:justify; line-height:16pt;\">
추천의 변
아나의 아이들은 네덜란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본 영화인데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 가장 힘이 있는 영화였다.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인간 존엄성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인권 영화제의 미덕이라고 하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하고 또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깨우칠 수 있다는 것. 인권에 대한 각성, 그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는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그것을 나타낼 수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들도 영화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알려지지 못한 부분이 많다. 분쟁이 종식되고 있지 않고 이스라엘의 무력침공 보다는 팔레스타인사람들의 저항이 ‘테러’라고 명명되어 부각되고 있는 실정인데 그 ‘자살테러’라는 것은 맥락을 지운 말일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비참한 삶의 현실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이 영화는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눈물이 나면서도 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현실에 대해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②이진영 활동가의 추천작 - 칠레 전투
(이진영 씨는 5회 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로 시작해서 2003년부터 2년 동안 인권운동사랑방 상임 활동가로써 8, 9회 인권영화제를 기획하셨습니다. 현재는 영상미디어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이 인터뷰는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제 3호에 이진영씨가 쓴 기사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칠레 전투>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초의 칠레 정치 상황은?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모네다 궁 안에서 카스트로가 선물했다는 총 한 자루를 움켜쥐고 있던 아옌데는 결국 죽음을 맞았다. 선거로 이룩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이라는 평가와 그에 따르는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던 칠레 민중연합정부의 아옌데 정권은, 피노체트를 위시로 한 군부 쿠데타에 의해 결국 보이지 않는 역사 속으로 물러났다.
\'미국의 텃밭\' 취급을 당하며 쿠데타, 군사 독재, 내전, 혁명과 반혁명 등이 되풀이된 실로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겪어 온 라틴아메리카는 정치, 경제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폐허 위에서 체제 변혁을 시도하려는 민중들의 자율적인 풀뿌리 운동의 힘이 강력히 발산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70년 공산당, 사회당이 주축이 된 민중연합정부의 후보로 출범한 아옌데는 대통령 선거에서 1위를 획득하지만,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하여 의회 지명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기독교 민주당과 손을 잡고 대통령직에 오른다. 이 불안정한 동거 속에서 사회주의로의 신념과 열망으로 충만했던 민중들이 내뿜는 열기와 정권을 전복하려는 보수 세력들이 조장하는 혼란이 뒤범벅되어 카메라에 기록된다.
<칠레전투>는 아옌데 민중연합 정권의 천일 역사를 치밀하고 분석적인 논리로 접근하고 있는데, 민중들이 거리에 모여 환호하는 모습, 반정부세력의 쿠데타 등의 장면에서는 특히 역동성이 돋보인다. 영화 촬영 과정을 소개한다면?
1972년 칠레의 한복판, 파트리시오 구즈만과 다섯 명의 동료들은 16mm 카메라와 나그라녹음기 한 대, 코닥 흑백 필름만 갖춘 채 거리 거리를 누비며 칠레 역사를 채록한다. 그리고 부족한 조명시설 때문에 많은 장면들을 자연광 아래서 \'생생하게\' 찍어야 했다. 아옌데 정권 9개월 동안 숨가쁘게 진행된 칠레의 현대사는 6개월의 밀반출 끝에 쿠바로 옮겨져 6년의 편집과정 끝에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제2부 ‘쿠데타’의 마지막 장면은 쿠데타 이후 거리에서 촬영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임시 군사정부가 운영하던 TV방송을 통해 방영되었던 모네다궁의 폭격장면을 촬영하였다고 한다. 쓰러지는 모네다궁 사이로 아옌데의 육성이 흘러나오는 이 장면은 <칠레전투> 제2부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쓰라린 백미이다. 쿠데타가 발생하자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은 체포되었고 제작팀은 변장을 하고 조심스레 하나둘씩 출국했다. 그들 중 카메라맨이었던 조! 르쥬 뮐러와 그의 부인 카르멘은 74년 체포되었는데 카르맨은 살인되었고, 조르쥬 뮐러는 현재까지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오늘날 이 영화는 당시 칠레의 현장을 탁월하게 기록한 대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데, 진영씨가 이 영화에 대해 짤막하게 표현한다면?
이 영화는 연대기적인 편집 방식을 취하지 않고, 당시 칠레의 숨가쁜 지형을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인 범주로 나누어 정교한 구상 하에 촬영한 이후, 이를 "어느 하나의 사건에 대해 연관된 가능한 모든 질문들을 동시에 던지는 방식"으로 재구성하였다. "사회 변혁과 정치적 인식의 제고를 위한 핵심적 도구로서 다큐멘터리를 포용해 온 라틴아메리카 전통"의 질적 도약을 거둔 작품이면서, 광범위한 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으면서 정치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지평을 일구어낸 분석적인 영화이다. 뿐만 아니라 논리적이면서 서정적인 영상 언어로 심연을 울린다는 점도 <칠레전투>에서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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