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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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울산시 울주군에 위치한 삼성SDI 공장 앞.
이른 시각인 아침 9시 30분, 200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삼성의 노조 탄압과 구조조정을 규탄했다.
삼성SDI공장이 생긴 이래 이 정도 인원이 모인 집회는 처음이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에 맞서 투쟁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지 노동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회유와 협박, 도감청, 미행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노조의
싹을 자르기로 유명한 삼성에 맞서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거리에 나섰다. 삼성SDI에서 지난 3월 31일 정리해고를 당한
사내기업 하이비트 노동자들이다.
삼성 내에서 노조를 결성하기도 어렵지만 삼성 건물
근처에서 집회를 열기도 쉽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 사측이 미리 집회 신고를 하기 때문에 집회 신고를 위해 경찰서 앞에서 밤새는 일이
허다하다.
26일은 투쟁을 시작한 지 한 달만에 공장앞 집회 허가를 받은 기쁜 날.
금속노조 울산지부 조합원들과 함께 아침 9시부터 종일 집회를 진행했다.
하이비트
해고노동자 최세진 대표는 “길거리로 내쫒는 것도 부족해 협박, 미행으로 마음까지 아프게 하고 있다”며 “초일류 기업 삼성은 노조 탄압마저
초일류”라고 비판했다.
이 날 집회에는 삼성SDI 해고자로 9년 넘게 복직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송수근씨를 비롯해 구조조정 위기에 놓여있는 삼성SDI 사내하청 그린전자 조합원들, 정리해고에 맞서 복직 투쟁을 진행중인 삼성코레노
조합원들도 참석해 삼성내 노조의 연대를 과시했다.
어느 틈에 삼성에 맞선 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아졌을까. 10년 가까이 혼자서 공장 정문 앞 일인시위를 벌여온 송수근씨는 그 누구보다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요즘 하루하루가 신이 난다는 그는 “더 이상 쫒겨나기 전에 이런 싸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곧 희망”이라며 “삼성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마음이 여린 여성노동자들이 대부분이지만 하이비트
조합원들도 힘들기는커녕 뭔가 해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공장앞 집회와
거리행진을 마친 신은정 조합원은 “텔레비젼에서만 보던 거리 행진을 직접 해보니까 뭔가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밝은 웃음을 짓는다. 최세진 대표도 “그 전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를 몸으로 느끼는 것 같다”며 결의를
다졌다.
이 투쟁은 삼성노동자들만의 것이 아닌 금속노조 울산지부가 함께하고 있다.
금속노조 정후택 울산지부장은 “모든 조직적 역량을 총동원해 끝까지 싸우겠다”며 전국에 있는 금속노동자들의 연대를 호소했다.
삼성
SDI는 98년 외환위기 당시 8천명의 정규직 인원중 여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5천명을 사내기업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화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SDI측은 노동자들에게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와 정년을 약속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사내기업 비정규직이 2천명으로 감소하게 되자 삼성SDI는 2003년 비정규직 3천명을 모집했다. 2005년부터
구조조정은 다시 시작됐다. 비정규직중 2천명을 정리해고 했으며 올해 전환사원과 비정규직을 상대로 3천명을 추가 정리해고 하겠다는 것이다.
삼성 SDI는 구조조정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위로금으로
300만원에서 8500만원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으로 차별 지급했다. 정규직 남성은 8500만원, 여성에게는 1500만원을 지급한
반면 비정규직은 통상 500만원을 지급했다.
브라운관 관련 사내하청의 폐업에 이어
지난 3월 31일자로 휴대폰 액정을 만드는 사내기업인 하이비트가 계약해지를 통해 노동자들을 해고 했다. 일방적인 계약해지와 더불어 사측이 제시한
것은 약간의 위로금과 취업알선이었다.
하이비트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다수 서른을 넘기지
않은 여성노동자들로 고등학교 졸업 후 입사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휴일 없는 연장근무로 한 달 꼬박 일해야 고작 130만원 정도의 월급을
손에 쥘 수 있으며 대개는 백만원을 넘기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규직과 차별을
당하면서도 묵묵히 일하던 그들에게 갑작스런 계약해지 통보는 억울하다는 말로도 다 설명하기 어려웠다. 다시 일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들은
금속노조 울산지부를 찾아갔다.
계약 해지된 당일 저녁 10시까지 공장 본관앞에서
침묵농성을 벌였다. 4월 2일에는 출입을 막는 공장 관리자들에게 폭행을 당해 2명이 병원에 실려가는 일도 발생했다.
일방적인 정리해고를 당한 이들을 더욱 억울하게 만든 것은 ‘주거침입’을 했다는 이유로
날아온 고소, 고발장이다. ‘구속될 수 있다’는 회사측의 협박과 회유, 미행과 감시는 처음 노조를 만들고 투쟁을 하는 이들에게는 힘든
시련이었다. 더군다나 무노조신화로 국제적 명성을 날리고 있는 삼성이 아니던가.
투쟁
일주일만에 결국 두 명이 복직 투쟁을 포기했다. 하지만 남아있는 이들은 17일 선전전을 시작으로 투쟁을 재개했다. 여느 삼성 노조가 그렇듯이
이들도 공장앞 집회 신고를 내기 위해 매일같이 사측과 경찰서 앞에서 릴레이를 벌여야 했으며 결국 26일 집회 허가를
받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