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한 토론방식 중 하나가 논리나 가치대신 도무지 외워지지 않는 숫자나 통계를 늘어놓는 것이다. 수학은 따질 여지없는 확실한 결론을 내놓는 학문이고, 숫자로 설명된 말은 어딘가 설득력을 얻는다. 거짓말도 숫자를 통하면 진실처럼 보일 때가 있다. 때문에 언론은 숫자를 좋아한다. 노동운동은 그야말로 간절하게 기자회견을 열지만, 언론은 당신의 주장 말고 숫자를 내놓으라고 투덜댄다. 숫자의 확실성과 객관성을 누가 차지하느냐의 문제로 숫자는 갈등이나 집착의 대상이 되기도 하다. ‘경쟁력강화’라는 절대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1등은 나를 과시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자 집착목표다. 집회참가자 숫자에 대한 보도도 힘을 과시하는 집착의 대상이다. 그러나 집착은 문제를 낳기 마련이다.
거짓말꾼들
지난 노동절 한국노총집회 보도가 가장 극명한 예다. 언론은 집회 참석자 규모를 한국노총 추산 13~15만, 경찰 추산 5만이라고 나란히 보도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군중규모도 아닌데 무려 8~10만 명의 차이를 보이니,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숫자의 객관성은 완전히 파괴되고, 양 쪽 모두 혹은 어느 한 쪽은 뻔뻔한 거짓말꾼으로 전락했다. 민주노총의 집회인원을 두고도 차이는 있었다. 시청광장의 공식면적을 0.8m로 나눴을 때 최대수용인원이 1만 8천이라는데, 그날 민주노총 추산은 1만~1만5천이었고 경찰 추산은 8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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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절 집회 보도기사 예시 |
<톰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그냥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숫자를 활용한 대표적인 거짓말인 통계다. 한 때 미군이 신병모집용으로 내건 광고에선 이런 통계가 사용됐다. 같은 기간 해군의 전사자가 1천 명당 9명인데 반해 뉴욕 시민의 사망률은 1천 명당 16명이라는 것이다. 즉, 군에 입대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신체검사를 통해 매우 건강한 20대 젊은이를 뽑은 미군과 자연사와 병사, 사고 등 수많은 이유로 죽는 사람들이 생기는 뉴욕시민을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통계란 이런 것이다. 이런 통계를 이용한 대표적인 정치전술이 바로 여론조사다. 작년 지방선거와 지난 재보선 이후에도 빗나간 여론조사를 두고 많은 언론에서 여론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시하는 기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숫자, 그 새빨간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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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티칸미술관의 피타고라스 흉상.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수학이론의 창시자. 수학의 기초이론인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더불어 “만물은 수다. 수학은 형상과 사고를 재는 잣대며, 선과 악을 구분 짓는 잣대이기도 하다”라는 말이 전해진다. |
<새빨간 거짓말, 통계>라는 책에서는 숫자조작의 방식도 볼 수 있다. 한 상점에서 ‘50%+20%’라는 할인광고를 할 경우 사람들은 70% 할인이라고 무심코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50% 할인한 가격을 기준으로 다시 20%를 할인한다는 표현으로서 사실상 총 할인율은 60%라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숫자는 거짓말에 동원된다. ‘50%+20%’이라는 표현을 보고 골똘히 따져보는 사람은 드물다. 그냥 ‘70%할인’이라고 쓰지 않은 데에는 다 꿍꿍이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도 언론은 숫자를 갈망하고, 특히 정부나 기업에서 내놓는 숫자나 통계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쓴다. 이런 언론환경에 대처하려면 어찌됐든 노동운동도 유리한 숫자나 통계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언론은 지배력과 집행력을 가진 집단이 아닌 이상, 주장은 단지 주장일 뿐이며 객관적 근거, 즉 숫자를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숫자를 이용한 가장 거대한 사기는 바로 GDP다. GDP는 1년간 한 국가에서 생산된 물건과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모두 더한 값이며, 시장을 통과하는 생산물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GDP를 올린다. 석유를 과다 사용하여 환경을 오염시켜도 석유회사가 생산하고 판매한 만큼 GDP는 올라간다. 범죄와 갈등으로 사회가 불안해도 특수열쇠와 시위진압장비의 판매량만큼 GDP는 상승한다. 과잉경쟁 스트레스로 국민건강이 악화돼도 위장약이 많이 팔리면 GDP는 상승한다. 평화와 생명을 빼앗는 무기라도 생산되고 거래되면 GDP는 증가한다. 그럼에도 지금껏 한국 정부는 GDP 수치에 의존해 정책을 입안해왔고, 치적을 자랑해왔다. 그러나 국민들은 GDP가 상승하는 와중에도 행복하지 않다고 아우성이다. GDP라는 수치는 자본의 이윤양은 몰라도 국민의 삶을 규정하는 척도는 못된다. 때문에 프랑스는 GDP를 대신할 ‘행복지수’개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자본의 비협조와 여건부족을 이유로 완성하진 못하고 있다.
한편, <20대 독립해서 1억 만들기>,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등 불황일수록 사람들은 확실성에 집착하고 숫자에 주목한다. 때문에 불황기의 책 제목에는 숫자를 넣어야 한다는 속설도 있다. 그러나 숫자가 진실을 전달한다는 판단은 믿을 게 못된다. 진실은 진실만이 전할 수 있을 뿐이다. 숫자, 그 자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는 거짓을 감추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운동이란 때론 숫자에 가려진 진실을 찾아내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