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노동자들은 1996년부터 매년 4월 28일을 ‘국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정하고 있다. 지난 1993년 4월 태국 인형공장에서 공장문이 잠긴 채 일하다 화재로 사망한 노동자 188명을 추모하기 위함이다. 민주노총도 2002년부터 산재사망 추모행사를 매년 이날 열고 있고, 4월을 ‘노동자 건강권 쟁취의 달’로 정해 산재 추방을 위한 각종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에 맞춰 <금속노동자>는 4월 28일까지 매주 한편씩 네 번 관련한 현장 조합원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2010년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전체 1천4백만명 노동자 중 9만8천645명이 재해를 당했고, 2천2백명이 사망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의 1.7배, 자연재해에 비해 16배 많은 수치다. 특히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산재사망률이 가장 높으며 특히 미국, 일본, 영국 등의 나라들과 비교하면 산재 사망률이 10배 이상 높다.
그러나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2008년 1월에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으로 40여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지만 시공사 대표와 법인은 벌금2천만원을, 현장소장에게는 징역10월, 집행유예 2년을, 방화관리자에게는 금고10월, 집행유예 2년을 각 선고 받았을 뿐이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3년간 중대 재해 처벌 현황을 살펴보면 총 119건, 121명이 사망했으나 사업주 구속은 단 1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6년의 평균 벌금액은 261.5만원이었으며, 2007년의 평균 벌금액은 378만원으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사실상 매우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매년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 위반으로 4천5백여건이 검찰로 송치되지만 관련자가 구속된 경우는 3건 정도이고, 1천여건은 불기소 처리되며, 나머지는 벌금처벌만 받았다.
산재발생은 세계 최고인데, 처벌은 솜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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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산업재해는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사용주에겐 솜방망이 처벌만 행해지고 있을뿐이다. |
산안법은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소를 제거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로 제정됐다.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해 노동력 손실을 방지하고, 생산성향상 및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비록 노동자의 건강권보다 생산성향상과 경제발전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이 같은 목적만이라도 달성하려면 강한 준수의무가 지켜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산안법은 1999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된 규제완화 결과, 이제는 사업주의 형식상 준수의무를 규정한 목록에 불과하게 됐다. 특히 기소권을 가진 검찰은 법 위반 처벌보다는 업무상 과실 치사를 기준으로 처벌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처벌 기준을 삼을 때 사업주는 사실상 간접적 처벌 대상만 된다.
생산과 발전 논리를 앞세우는 우리나라 분위기도 큰 문제다. 우리 사회는 성장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희생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 산업재해 역시 산업화과정에서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요악’이라는 논리에 길들여져 있다.
이러한 이상한 논리는 사업주들이 산안법을 더 완화해 기업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사업주들은 기업이 제대로 살지 못하면 결국 나라가 가난해 지고 고용도 불안해 질 것이라는 협박을 하면서 더욱더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해가고 있다. 이 속에서 노동자들은 더욱 더 노동강도가 높고 위험한 작업으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내 몰리고 있다.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임금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파괴되어도 좋다는 이상 망측한 논리를 받아들이고 있는 정부와 사법부 그리고 이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 현실을 바꾸지 않는 이상 사실상 노동자의 죽음과 병듦의 원인을 없애기는 힘들 것이다.
산재는 ‘필요악’이라는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지금 노동계에서는 기업살인법(중대재해특별법)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법 하나를 추가로 만들겠다는 취지가 아니다. 기업살인법을 만들더라도 산재가 경제 성장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인식이 존재하는 이상 처벌 역시 현재처럼 이루어질 것이다. 현재 산안법 처벌 기준을 보더라도 위험예방조치의 미실시로 노동자자가 사망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문제는 처벌 기준이 높더라도 실제로 처벌이 제대로 되는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은 산안법을 더 완화해야 한다는 사업주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는 운동이 돼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유해․위험 작업은 하도급 처리가 되고 있고, 하도급 업체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 원청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이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는 싸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임금을 받는 다는 이유만으로 파괴돼도 어쩔 수 없다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인격과 건강권이 자본의 이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상식. 이 상식이 인정받는 미래는 이 같은 운동을 통해 만들 수 있다.
김정철 /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직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