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어디로 갈 것인가① 산별교섭 진단과 평가
금속노조는 지난해 11월 23일 임시대의원대회 때 조직발전전망 마련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을 결정했다. 노조는 올 6월 말까지 특별위원회를 가동해 △조직체계 △산별교섭 △교육체계 △재정구조 등을 담은 노조의 향후 발전전망 보고서를 마련한다. 그 뒤 노조는 발전전망에 대해 7~10월에 집중적으로 조합원 토론에 부친다는 계획이다. 현재 노조는 지난 3월 24일부터 특별위원회 산하에 교섭 조직 교육 재정 등 네 개의 소위원회를 두고 초벌토론에 돌입해 있다. 이에 노조 편집국은 각 소위원회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노조의 조직발전전망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시리즈로 담아보려 한다. / 편집국
“금속노조 교섭 이대로는 안 된다.” 교섭소위원회 토론에 참여하고 있는 노조간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토론은 지난 3월 24일 이래 지난 20일까지 벌써 세 차례 진행됐다. 교섭소위원회는 일단 산별교섭의 현주소를 진단한 뒤 향후 교섭구조와 체계를 초안 수준으로 다시 설계하는 것을 목표로 토론일정을 잡고 있다. 지금까지 ‘진단과 평가’에 토론이 집중돼왔다. 대부분 토론참가자들은 “중앙교섭은 실패했다”고 냉정하게 진단한다.
정순로 현대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완성차가 중앙교섭 참여를 거부하고 완성차지부마저 의지가 부족했다”며 ‘실패’로 규정했다. 공계진 노조 정책연구원장도 “2007년 이전 중앙교섭까지는 유의미했다”고 전제하면서도 “산별전환 뒤 15만으로 덩치가 커졌음에도 2만여 명 수준에만 해당하는 교섭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역시 ‘실패’라 진단했다. 임혜숙 노조 정책실장은 “중앙교섭 중심의 교섭전략은 한계에 봉착했으며 이제 새로운 전략과 방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강순 구미지부 교육부장은 “15만 산별교섭은 실패했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박용규 대구지부 정책부장은 “지난 3년 동안 현대기아차를 중앙교섭에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3개년 전술을 채택했지만 실패했다”고 밝혔다.
중앙교섭 실패 사실상 한 목소리
중앙교섭이란 금속노조가 그 상대방인 사용자단체와 벌이는 교섭이다. 현재 금속노조 관련 기업 약 1백 곳 정도가 사용자단체에 가입해있다. 반면 현대기아차나 GM대우차, 그리고 두산그룹사 등의 대기업은 가입하지 않았다. 조합원 수치로 계산하면 2만 5천 여 명 수준만 중앙교섭 결과에 영향 받는 셈. 나머지 12만 여 명은 여전히 기업별교섭 영향권 하에 사실상 있다. 15만 명 규모의 산별노조가 된 뒤 3년째 이런 상태니 ‘실패’라는 진단이 억지스런 평가는 아니다. 왜 실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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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교섭이란 금속노조가 그 상대방인 사용자단체와 벌이는 교섭이다. 현재 금속노조 관련 기업 약 1백 곳 정도가 사용자단체에 가입해있다. 조합원 수치로 계산하면 2만 5천 여 명 수준. |
노조의 임 실장은 “중앙교섭 성사를 위한 전략전술 없이 사용자들로 하여금 무조건 교섭에 참석하라는 형식으로만 접근한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꼬집는다. 교섭의 요구와 그 요구로 인해 혜택받는 대상이 누구인지 정밀한 설계없이 교섭성사라는 ‘당위’만으로는 한계가 컸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노조의 공 정책연구원장은 “요구안이 조합원 관심을 끄는 수준으로 제출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 현대차지부 정 실장은 “중앙교섭 요구가 이미 현대차 단협에 있는 문구거나 그보다도 못한 수준의 요구인데 어떻게 조합원들이 그 요구 쟁취에 절박성을 갖겠는가”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공 원장도 “기업별 교섭보다 중앙교섭이 유익할 수 있다는 것을 조합원에게 보여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교섭 성사를 위한 전략전술 가운데 ‘요구안’ 설계에 실패한 것이 교섭성사 실패의 주요원인으로 모아진 셈.
중앙교섭 요구, 확 와닿지 않는다?
중앙교섭이 시작된 2003년 이래 노조는 △주5일제 △손배가압류 금지 △산별최저임금제도 도입 등을 사용자들로부터 따냈다. 아울러 해외공장과 신기계도입 및 공장이전 때 사전 통보와 합의 제도를 담은 사업장 단협 문구를 다소 보완하기도 했다. 또 비정규 조합원 활동보장과 사내하청노동자 처우개선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내용을 합의로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은 이른바 대공장 조합원들의 혜택을 더 늘리는 내용은 분명 아니다. 임 실장은 “산별노조는 산별협약을 통해 조직되지 않은 미조직 노동자에게까지 적용범위를 넓혀나가며 전사회적으로 노동조건을 끌어올리고 동시에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유력한 무기”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것만 강조해서는 조직된 대공장 노동자의 ‘구미’를 당기게 하지 못한다. 바로 이 대목이 현재 금속노조의 주요 딜레마인 셈.
때문에 “이 문제는 단순히 투쟁을 통해 사용자를 교섭석상에 앉히려 노력만 하면 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현대차 정 실장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또한 정 실장은 “중앙교섭 의제는 최저임금제도 뿐만 아니라 사업장단위에서 다루기 힘들지만 조합원들로서는 관심이 집중될만한 의제를 갖고 그 기준을 만들어가는 형태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런 의제설정에 실패했다는 뜻인데 과연 그런 의제가 무엇이 있을까? GM대우차 황해창 정책부장은 “우리는 대우그룹 부도와 정리해고 및 해외자본 인수 등을 경험하면서 고용문제가 최대관심사로 자리잡혀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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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이래 노조는 △주5일제 △손배가압류 금지 △산별최저임금제도 도입 등을 사용자들로부터 따냈다. 아울러 해외공장과 신기계도입 및 공장이전 때 사전 통보와 합의 제도를 담은 사업장 단협 문구를 다소 보완했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 내용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
그래서 GM대우차지부가 2006년 산별전환 할 때 그곳의 노조간부들은 “구조조정 되어도 다른 회사에 취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게 산별노조”라는 식으로 조합원에게 얘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중앙교섭 요구안에는 이와 관련한 설계가 되어있지 않다. 현대차 정 실장도 “만약 주간연속 2교대제 같은 제도개선 내용을 금속노조에서 제기하여 완성사와 부품사 상황에 맞게 제대로 주도할 수만 있었다면 훨씬 가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구지부 박 부장은 “관성에 젖어 한 교섭테이블에 사측을 다 모이게 하는 것에만 집중했고 그와 관련한 조직 내 토론이 부족했다”고 진단한다. 공 원장은 “전략전술 없이 무조건 중앙교섭 성사투쟁만 벌인 것은 일종의 ‘좌편향’”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관성에 빠져 하던 대로만 했다”
노조의 임 실장은 “15만 조합원의 내부 격차가 심하다”고 말한다. 4만 이상 조합원 규모에서부터 10명 규모까지. 또한 완성사와 부품사. 그리도 자동차 업종과 조선 및 철강업종에 전기전자나 기계금속까지. 그리고 2003년 이래 중앙교섭 성과물 혜택의 경험을 가진 조합원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간의 온도 차이까지. 임 실장은 “이런 구조적 차이를 제대로 반영한 중앙교섭요구안 설계는 진전이 없었다”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교섭소위원회 토론참가자들은 15만 조합원들을 실질적으로 하나로 모아낼 수 있는 요구를 노조가 지금껏 내걸지 못해왔다는 진단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과연 15만 중앙교섭 성사의 실패가 요구안 설계 실패에만 있는 것일까? 대구지부 박 부장은 “2만 중앙교섭에다가 현대기아차 공동교섭, 두산그룹사 공동교섭, S&T그룹사 공동교섭 등 조합원 이해관계 공통성으로 쉽게 묶일 수 있는 교섭단위 형성 고민이 있었으나 토론을 부칠 수조차 없었다”고 털어놨다. 공 정책연구원장도 “이제 하나의 교섭테이블에 사용자를 모두 앉히는 것보다 완성사, 부품사, 철강 등으로 교섭단위를 나누는 것을 고민할 시점”이라며 “그것을 포함한 산별교섭 개념을 다시 만들 때”라고 강조하고 있다. 현대차 정 실장도 “처음부터 업종교섭 또는 완성차교섭을 추진했다면 양상은 달랐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15만 중앙교섭 성사를 전략적 목표로 하여 전술적으로 유연한 교섭형태를 다양하게 시도했어야 됐다는 지적들이다. 이 지적들은 앞으로의 산별교섭을 설계하는 데 있어 중요한 토론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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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는 매해 2월 임단협 요구안 확정을 위한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해왔다. 하지만 15만 내부의 구조적 차이를 제대로 반영한 중앙교섭요구안 설계는 진전이 없었다. |
한편, 요구안 설계를 잘하고 전술의 유연성을 갖는다고 교섭이 순순히 성사될까. 대구지부의 박 부장은 “내가 노조 단체교섭실장을 할 때 현대차 등으로부터 이런저런 전제조건만 충족되면 다음해 교섭에 참석하겠노라는 확약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부장은 “그러나 그 전제조건들을 확인해 보니 명분일 뿐 실제 교섭에 아예 나올 생각이 없었던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현대차지부 정 실장도 “정확히 말해 회사는 여기에 안 끼고 싶어한다. 사측이 준비 안된 것이 아니라 교섭에 나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심지어 정 실장은 “중앙교섭 요구 수준을 낮췄으니 교섭에만 오면 된다는 식으로 회사를 꼬신다고 교섭이 성사되는 게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조합원 전체를 동원하는 ‘투쟁’이 교섭성사의 필요조건이라는 뜻이다.
결국 ‘투쟁’이야말로 교섭성사 필요조건
이와 관련해 공 정책연구원장은 “지난 3년간 투쟁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것을 지도부 의지부족으로 단순화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노조의 임 실장은 “투쟁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다소 차이를 뒀다. 특히 구미지부 임 부장은 “15만이 함께 싸우는 기획을 지난 3년 동안 한번도 만들지 못했다”며 “투쟁력이 약해졌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대구의 박 부장은 “대구 대동공업지회의 경우 회사의 중앙교섭 참가 압박을 위해 1백70일을 파업했던 경험이 있다”고 소개한다. 구미의 임 부장도 지난 시기 수많은 열사들을 사례로 들며 “결국 투쟁으로 돌파할 문제지 구조적 문제 핑계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교섭요구안의 치밀한 설계와 다양한 교섭단위에 대한 유연한 고민, 그리고 실제 교섭을 성사시키는 핵심 수단인 투쟁까지. 지난 3년 교섭실패의 원인을 짚어내는 토론자들의 무게중심은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교섭실패의 원인은 어느 것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노조 임 실장의 의견에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하영철 노조 정책국장은 “지금까지 중앙교섭 쟁취 말고 사실상 교섭방침이 없었던 것과 달리 올해 영역별 의제도 마련하고 이런 토론도 벌이면서 새로 시작하는 단초를 마련하고 있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라고 강조한다. 남은 건 평가보다 이후 산별교섭구조와 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다. 교섭소위원회 토론자들은 5월 12일 이와 관련한 본격적인 토론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어찌되었든 “금속노조 교섭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평가된 셈이다.